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준 Feb 21. 2024

58화. 산과 구슬 (1)

<흑마법서> 소설 연재

 석정궁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2호점의 공사장 역시 쑥대밭이 되었다. 공사장은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된 지 오래였다. 혜성과 직원들은 차에 석판을 싣고 2호점의 공사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차를 탄 채 공사장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지훈은 그 석판이 무엇에 쓰는 건지 알았을까요?”


 차 안에서 이태민이 물었다.


 “아마 몰랐을 것 같아요. 매자에서 노예들에게 석판을 찾아내라고만 말했을 뿐 그 석판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김지훈은 아마 석판을 찾아낸 후에도 그게 어디에 쓰는 건지는 몰랐을 테지만, 그것이 매자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라는 걸 짐작했을 테니 석판과 노예들을 바꾸려 했겠죠.”


 혜성이 말하는 동안 차는 공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김지훈의 입장에서는 무엇에 쓰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석판을 되찾기 위해 매자의 발굴장에 잠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그건 그저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그것이 꼭 있어야 노예 반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김지훈이 석판을 되찾아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석판은 아직 이곳에 있을 거라는 말이군요.”


 김구름의 말에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혜성과 김구름은 석판과 함께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조수석에 탄 박준식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전혀 빛나지 않네. 혹시 이거 너무 오래돼서 마력이 다 떨어진 거 아닐까?”


 “이건 마법의 물건이야. 건전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이태민이 말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마법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잖아.”


 박준식의 말에 혜성이 대답했다.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애초에 이 물건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둔 물건이니까 초고대인들이 이 석판에 아주 강력한 마법을 걸어뒀을 거예요. 아직 수명이 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황량한 공사장 이곳저곳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석판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직도 아무 반응이 없어요?”


 운전대를 잡은 이태민의 물음에 혜성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


 “네.”


 “공사장에는 없는 것 아닐까요?”


 김구름의 말에 혜성은 창밖을 보다가 물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곳들은 꽤 있죠.”


 이태민의 말에 박준식이 대꾸했다.


 “근데 그러면 차에서 내려서 이 무거운 석판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거잖아. 나머지 반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혜성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앞을 가리켰다.


 “건물 쪽으로 바짝 붙어보면 어떨까요?”


 “석정궁 건물 말인가요?”


 “네.”


 이태민은 석정궁 2호점 건물 근처에 차를 가까이 붙인 뒤 건물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때였다.


 “어, 잠깐만요!”


 김구름이 외쳤다.


 “방금 석판이 약하게 빛이 났어요!”


 혜성도 소리쳤다.


 “저도 봤어요! 석판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빛난 것 같았어요.”


 이태민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지금은 그대로인데요?”


 “방금 전에 순간적으로 빛났어요.”


 김구름의 말에 박준식이 재촉했다.


 “후진을 해 봐!”


 이태민은 천천히 차를 후진시켰다. 차가 몇 미터 뒤로 가자 석판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빛나고 있어요!”


 혜성이 외쳤다.


 “부장님, 여기서 차를 멈추세요! 석판을 들고나갑시다.”


 혜성과 김구름은 석판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 석판의 빛이 좀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석판을 들고 그 장소 주변을 천천히 움직였다. 박준식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잠깐만, 건물 쪽으로 좀 더 가보면 어때? 건물 쪽으로 갈수록 석판이 빛나고 있어!”


 그들은 박준식의 말대로 석정궁 건물 외벽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석판의 빛이 한층 강해졌다.


 석판을 들고 건물 벽을 따라서 몇 걸음 움직이자 빛이 살짝 약해졌다. 그래서 다시 반대쪽으로 움직이자 석판이 다시 푸른빛을 발했다.


 “이 지점 땅 속에 묻혀 있나 봐요.”


 혜성이 외쳤다.


 네 사람은 차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건물 외벽 바로 앞부분의 땅을 열심히 팠다. 한동안 삽질을 하던 이태민이 외쳤다.


 “잠깐만요, 방금 제 삽에 뭔가가 닿았습니다.”


 손으로 그 부분의 흙을 털어내자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모서리가 나왔다. 네 직원은 서로를 쳐다봤다.


 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찾은 것 같군요.”


 그들은 석판의 모서리 주변을 열심히 파헤쳤다. 삽질을 할수록 석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 속에 박힌 석판 역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빛나는 석판은 땅 속에 수직으로 묻혀 있었다. 어느 정도 흙을 파낸 뒤 그들은 무를 뽑듯이 석판을 잡고 땅에서 뽑아냈다. 이태민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이렇게 건물 가까이에 묻어 놓으면 확실히 사람들이 유물을 찾기 어려울 테죠. 발굴 현장은 건물에서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김지훈이 머리를 썼군요.”


 그들은 땅에서 꺼낸 석판의 흙을 털어낸 뒤 옆에 놓인 첫 번째 석판의 잘린 부분에 조심스럽게 맞춰봤다. 두 석판의 잘린 부분은 서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두 개의 석판은 이제 아주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석판 위의 마법 문자들이 석판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문자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두 개의 석판은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면서 표면이 액체처럼 출렁이더니 하나의 지형을 만들었다.


 커다란 산맥이 표시된 지도였다. 가운데가 넓게 파인 산 정상에 물이 고여 있었고, 그곳 한가운데가 빨간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붕새의 여의주가 있는 곳을 나타낸 지도로군요. 여러분, 지금 이 산이 어디로 보이세요?”


 혜성이 물었다.


 “제 생각에는.......”


 이태민이 대답했다.


 “백두산 같군요.”


 “제 생각에도요.”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네요.”     




 속전속결이었다. 혜성이 바로 출발하자고 재촉해서 다음날 그들은 경호원들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가서 함경북도의 삼지연 공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그들은 점심 무렵 삼지연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판에 표시된 빨간 지점은 백두산 천지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군요.”


 이태민이 석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백두산 천지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그럼 이거 큰일인데. 잠수 장비를 가지고 이 높은 산을 올라야 할까요?”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대답했다.


 “일단 오늘은 그냥 한 번 올라가 보고, 그 말이 맞다면 내일 다시 내려와서 잠수 장비를 챙겨서 올라가 보도록 하죠. 잠수 장비를 갖고 올라가려면 엄청 힘들 테니까.”


 “그럴까? 하긴 오늘 안에 반드시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박준식이 말했다.


 그들은 잠시 의논을 한 뒤 김구름의 말대로 일단은 그냥 바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들은 같이 온 경호원들에게 산 아래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한사코 자신들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모두 함께 출발했다.


 백두산 천지까지는 아주 긴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었다. 혜성 일행은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섞여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동안 그들은 산 아래에서 산 간식을 먹으며 잡담을 주고받거나 밖을 구경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혜성에게 김구름이 물었다.


 “사장님은 백두산에게 와보신 적이 있나요?”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사실 제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에 올 일이 거의 없거든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오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멋져요.”


 혜성은 김구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사님은 전에 오신 적이 있나요?”


 “네,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혼자 오셨었나요?”


 그 말에 김구름은 대답 없이 밖을 쳐다보기만 했다.


 케이블카는 중간에서 몇 번 갈아타야 하는 구조였다. 마지막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에서 천지까지 오르려면 300미터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했다. 평소에 등산을 전혀 하지 않는 혜성에게 산을 오르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고작 300미터였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숨이 찼다. 이태민은 힘든 기색이 없었지만 몸집이 작은 김구름과 박준식도 힘들어 보였다. 특히 박준식은 힘들다고 엄살을 부렸다. 혜성은 같이 따라온 경호원들에게 갑자기 산을 오르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힘든 기색 없이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정상에 도착했다.


 혜성은 백두산 천지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되었다. 천지가 크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잠시 천지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가져온 석판을 보며 목적지를 확인했다. 그들이 천지에 도착하자 석판 위의 지도는 천지를 확대한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빨간색 점은 여전히 천지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들이 현재 있는 위치와 천지로 들어가는 길이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천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약간 빙 돌아가서 물가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곳에 가면 천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나 봐요. 한 번 그 앞으로 가보죠.”


 혜성의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들은 석판에 표시된 길을 따라 물가로 내려갔다. 이제 석판 위의 경로는 그곳에서 천지의 중앙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박준식이 물었다.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혜성은 석판을 들고 물가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의 운동화 밑창이 물에 약간 잠겼다.


 “흠.”


 혜성은 그곳에 잠시 서 있다가 뒤를 돌아봤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 순간 혜성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입을 벌렸다.


 “어, 사장님!”


 박준식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혜성의 앞에 있던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생겼다.


 혜성도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태민이었다.


 “천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군요. 한 번 가볼까요?”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새로 생긴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은 계속해서 갈라지면서 천지의 중앙까지 닿았다. 이 신기한 모습에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혜성 일행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물로 벽이 세워진 길을 따라서 계속 내려갔다. 혜성이 석판을 든 채 가장 앞에서 걸었다. 혜성은 걸어가면서도 그의 양 옆에 있는 물 벽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걸어가는 도중에 이 물 벽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뒤따라오는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모두들 말없이 혜성을 따라왔다.


 그들은 어느새 천지의 중앙에 도달했다. 천지의 한가운데에는 지름이 5미터 정도 되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구멍인지, 아니면 물이 갈라지면서 열린 구멍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혜성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쪽은 계단이었다. 벽에 횃불이 붙어있는 어두침침한 계단길이 끝을 알 수 없는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혜성은 다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침착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계단은 원형으로 둥글게 이어지며 끝없이 아래로 뻗어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려갔을까?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평평한 바닥이 나왔다. 지하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이었다. 문 앞에 선 그들에게는 문의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차가운 초록빛이 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 위에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새 그림 역시 어찌나 큰지 새의 머리와 날개의 끝부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붕새로군요.”


 김구름이 말했다.

이전 27화 57화. 석판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