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안하게 유럽 자동차 여행하기> 남유럽여행
▲ 쿠엥카 파라도르(Parador de Cuenca), 절벽 위의 집(Casas Colgadas) © José
6시간 거리에 있는 두 번째 방문지, 쿠엥카 파라도르(Parador de Cuenca)로 향한다. 10월 중순(中旬) 아침, 자동차 밖은 31℃이다. 차창밖 풍경은 온통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독특한 형태로 틀을 잡아서 성장속도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포도와 올리브로 숲을 이루는 경작지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파라도르 근처에 오니 온도는 10℃ 대로 급강하한다. 광활한 대평원이 나타나고 실개천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는 길을 달리면, 울창한 숲과 붉은 속살을 드러낸 또 다른 경작지가 펼쳐진다. 아내는 경험한 적 없는 대평원 속에 갇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공감(共感)이 가는 풍광이다.
오래전 미국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하며 끝없는 서부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다. 사람도 차도 흔적 없는 곳을 내달리며 두려움보다는 흥미롭고 신기했다. 젊음이 주는 자신감과 모험심은 세월과 함께 위축되어 가고 무슨 일이든 시작에 앞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다가 너무 늦을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떠난 유럽 자동차 여행이다.
광활한 대평원 끝자락에 마을이 보이고 목적지가 가까워 오자, 뜨겁던 한여름 태양은 어느새 거센 비바람으로 바뀌고 바깥은 15℃로 선선한 느낌마저 든다. 몇 시간 만에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기도 한다. 이번엔 다행히 시가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에 자리한 파라도르, 하지만 SUV 차량 문짝이 떨어져 나갈 듯 비바람이 거세다. 우리 마님의 고행(苦行)을 예고한다. 빗줄기가 잠시 기세를 줄인 사이 거칠고 불편한 길을 따라 힘겹게 캐리어 이동, 우산은 펼 수도 없다. 가죽 재킷에 빗방울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어젯밤의 거대한 성채에 비하면 한결 아늑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밖 풍경도 조금은 낭만적이다. 폭풍우 거세게 휘몰아치는 날씨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 방금 전 노동도 잊은 채 성(城) 밖 풍경을 즐기고 있다.
여전히 바람이 거센 아침, 쿠엥카 여행길에 나선다. 이곳은 마드리드(Madrid)에서 남동쪽으로 약 2시간, 발렌시아(Valencia)에서 북서쪽 약 2시간 30분 거리의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 자치주에 위치한 ‘중세 요새(성벽) 도시’이다.
무어인들(Moors)에 의해 방어적 위치에 건설된 요새 도시로써 중세 건축물의 뛰어난 보존 상태, 드라마틱한 자연환경 그리고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출처: https://whc.unesco.org). 스페인 최초의 고딕(Gothic) 양식 쿠엥카 대성당(Catedral de Cuenca)과 ‘카사스 콜가다스(Casas Colgadas/Hanging Houses, 절벽에 매달린 집들)’가 유명하다.
산 파블로 다리(Puente de San Pablo)는, 후에카르(Huécar) 강 가파른 협곡을 가로질러 동쪽 쿠엥카 파라도르와 서쪽 쿠엥카 대성당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이는 1903년 강 위 약 40m 높이에 건설된 106m 길이의 철골-목조 도보교(徒步橋)이다.
다리 위를 거칠게 휘감아 도는 비바람은, 다리를 건너는 아내의 탐방길을 망설이게 한다. 다행히, 철교 위의 정겨운 목제 보도(步道)와 아담한 아취형 장식물이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이끌어 준다.
‘카사스 콜가다스’는 가파른 강 협곡 위에 독수리가 둥지를 튼 형상으로, 쿠엥카에게 독수리의 둥지(Eagle's Nest)’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 약 15~16세기에 지어진 이 집들은 소나무 기둥, 석조, 석회로 된 전통적인 고딕 건축 양식이 특징이다. 특히, 후에카르 강 협곡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린 모습의 발코니는 바라볼수록 아슬아슬하다. 현재 이 주택은 미술관,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카스티야(Castile) 최초의 고딕 양식 대성당을 탐방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수제자들의 예술품, 추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각 시대의 다양한 예술적 건축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의 두번째 방문지, 쿠엥카 파라도르는 1523년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 order)가 건설한 산 파블로(San Pablo) 수도원이 있던 자리이다(출처: https://paradores.es). 고딕 양식의 교회, 르네상스 양식의 수도원 정원, 바로크 양식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며, 후에카르 강 협곡을 사이에 두고 카사스 콜가다스와 마주 보고 있다.
해외 여행하며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 고유 음식을 경험하는 일이다. 평소 즐기지는 않지만, 튀김 음식이 맛없는 경우는 거의 드물 것이다. 이곳에서 특화된 추로스(Spanish Churros)를 선택할 수 있어 시도해 보기로 한다. 종류와 먹는 방법이 무척 다양하지만, 호텔 식당 요리사가 즉석에서 만들어 준 추로스는 평소에 보기 드문 조합이다.
추로스 기원에 대한 몇 가지 가설 중 하나는, 스페인 목동들이 마을 빵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에서 일할 때 빵 대신 단순하고 휴대하기 쉽게 밀가루, 물, 기름을 섞어 만든 반죽을 야외 불 위에서 튀겨 만들었다는 것이다. 튀긴 모양 또한 추라 양(Churra sheep)의 뿔과 닮아서, 스페인 기원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추로스를 진하고 풍미 깊은 따끈한 초콜릿에 찍어 먹는(Churros con Chocolate) 방법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전채 요리(Hors d'oeuvres)로 갓 튀긴 추로스, 계란프라이(Fried eggs), 로메스코 소스(Romesco Sauce) 스타일을 선택했는데 맛이 깔끔하다.
조식(早食) 후,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긴 회랑 따라 운치로운 유리창밖 고즈넉한 빗속의 정원과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