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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캉 Jan 17. 2024

전주에 산다는 것

- 나의 역마살 이야기

 내게는 흔히 말하는 역마살(驛馬煞 : 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팔자)이 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들과 옆 동네들을 걸어서 돌아다니곤 했다. 금호동, 응봉동, 장충동, 약수동, 한남동까지… 가끔은 옥수동에서도 너무 먼 성수동, 광장동까지도 큰 집 제사에 맞춰 혼자 걸어서 찾아가곤 했다.

 걸어서 간 이유는 내게 차멀미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 뒷좌석에서 버스 바닥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 일부터, 중3 여름 방학 때 동네 친구 녀석과 위액까지 토해내며 금산과 장항(지금의 서천군 장항읍)까지 돌아다닌 것은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다.

<걷기왕>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공감이 갔던 것도 멀미와 걷기의 상관성 때문이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인 여고생 ‘만복’이 우연한 기회에 ‘경보’에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육상부에서 만난 선배 ‘수지’와 함께 대회 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나무위키)

그래서일까, 어릴 적부터 걷고, 돌아다니고,

멀미를 멈춘 청년 시절부터 혼자 낯선 도시와 거리에서 걸었던 나의 경험은

마치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알제(알제리의 수도)의 해안을 걷고,

<구토>의 로캉탱처럼 세상에 구토를 느끼고,

퀸의 보헤미안처럼 간절한 외로움으로…그런 마음으로 걸었었고 방황했던 것 같다.

강릉, 속초에서 부산, 울산, 마산, 여수, 목포까지 혼자서 걸었던 수많은 길을 통해

내 역마살은 조금이나마 잠잠하게 수그러 들었다. 그렇게 위로 삼았다.


30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내 역마살은 전주에 살면서 걷기 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아갔다.

경기전 옆길
한옥마을 주차장 위에서 본 풍경



동문사거리 아침 커피숖 거리…전주 동문 사거리 골목은 마치 서울의 90년대 같아 정감이 있다.

전주 대사습청 중정

전주 라온호텔 뒷길..그리다 갑자기 의욕이 떨어져 미완성…



전주에 정착한 후에도 가끔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집 떠나 혼자 여행을 다녀오곤 했지만, 이제 이 도시는 걷는 것 만으로 나의 낯섦에 대한 쾌락을 채워주기도 했다. 익숙한 낯설음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그 외로움은 나를 찾는 길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주는 그 무엇,그 실존을 깨닫게 함을….

오늘도 행복한 걷기를 해본다.

이 도시는 참 걷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주 천변가에서 전주교대 쪽으로 보이는 풍경

휴일 이른 아침에 걷는 길은

조금의 상쾌함과 조금의 쓸쓸함, 조금의 밝음과 조금의 숙연함이

내 걸음걸음마다 묻어나 찌릿하게 온몸을 자극한다.



2024년 1월. 로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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