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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Feb 25. 2024

야단치다

노후에 자식한테 인정받음은 평안함을 누리는 삶이다.

“그래서 그렇다잖여어.”

방금 진료실에서 나오는 노인의 아들 목소리가 퉁명스럽다. 뭔가 석연치 않아 되묻는 노인의 굽은 허리가 발걸음을 잡는다.

“빨리 좀 와. “

출입문 쪽으로 가다가 화장실을 좀 가야겠다고 주춤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못마땅한 낯빛으로 다녀오라며 서 있다. 어머니는 한참 만에 나타난다. 아들은 상을 찌푸리며 또 볼멘소리다.

“왜 인자 나와. 에이, 나 빨리 가야는디.”

듣다못해 대기실의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늙으면 다 그래요.”

이번에는 지팡이를 놓고 나왔다고 화장실로 되돌아가려는 어머니가 짜증 나 더 큰 소리로 해 부친다.

“하, 나 참 환장 허 건네.”

간호사가 냉큼 달려가 할머니에게 지팡이를 가져다 드린다. 정형외과를 방문했을 때는 분명 뼈가 아파서 왔을 것이다. 어머니는 늙고, 남자는 막내아들쯤 되어 보인다. 어머니와 아들이 나간 뒤에 대기실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 찬다.

“몸을 부추겨도 시원찮을 판국에 신경질만 부리다니, 돼먹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르신들 눈은 기가 막히다. 정신없이 호되게 혼나는 노모는 집에까지는 잘 가셨을까. 아마도 아들의 행동거지로 보아서는 혼자 가라 하고 본인은 제 갈 길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고 이구동성이다. 오랫동안 내 뇌리에서 머물렀다. 자식 키우면서 어미가 야단은 쳐봤지만 자식이 어미한테 그토록 모질게 구는 모습은 왠지 씁쓸하다.


노후에 자식한테 인정받음은 평안함을 누리는 삶이다. 주눅이 들어 어쩔 줄을 몰라하던 노모가 안쓰러웠다. 어머니가 못마땅할 만큼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그런 행동은 제 얼굴에 침 뱉기다. 나와서도 그러할진대 집안에서는 오죽하랴 싶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어쩐지 씁쓸해진다.


나도 소소한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해외에 사는 아들이 어미 집에 다니러 왔을 때였다. 아들 건강검진받으러 동행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옆 사람이 재채기를 심하게 해댔다. 아들은 입을 가리지도 않으면서 미안하다는 소리도 않는다고 중얼댔다. 갑자기 나오는 걸 가지고 뭘 그리 까칠하게 구느냐는 식으로 나무랐다가 아들에게 되레 혼났다. 재채기나 기침이 나올 때는 입을 가리고 해야 예의란다. 누가 옆에 있든 없든 큰소리까지 내지르며 재채기를 해야 속이 후련하다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되도록이면 소리도 죽이고 옷소매나 손수건을 대고 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예전에 어른들은 학생이 담배를 태우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담배를 피우냐며 꾸지람을 주었다. 요즘은 어떤가. 학생이 담배 피운다고 탓하는 이가 없다.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가 버스가 오면 길바닥에 탁 내던져버리고 올라탄다. 여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부를 때 성을 붙이든가 이름을 붙여 -‘샘’이라고 부른단다. 기가 막힐 일이다. 더 가관인 것은 수업 시간에 잠잔다고 지적을 하면 인권침해 운운하며 눈을 부릅뜨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화장을 하는 등 문제 학생들의 행태는 가지가지라고 교사들은 말한다.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섬겼던 때가 그립다. 그때는 선생님도 학생도 진실이 묻어났다. 부모님은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당부를 하고, 선생님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가르쳤다.


병원에서 아들이 노모에게 야단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건강해야겠다. 내 자식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건강법을 터득해야 한다. 지극히 기본적인 일상을 철저히 지키려 한다. 내 똥은 내가 치워야 하는 세상에 돌입했다.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찾을 요량으로 가까운 병원들을 정해 놓았다. 아들이 안부를 물을 때면 몸에 문제가 있어도 없다고 뚝 잡아뗀다.

“암시랑 토 안혀야, 걱정하지 마라.”

그럴까. 나이 들면 기계처럼 사방에서 신호가 오기 마련이다. 또한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 요양원에서는 혼나기도 한다. 정신없는 치매환자들은 묶이기까지 한다. 어릴 때는 예쁘기만 했던 자식이 어미한테 볼멘소리나 해대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세태도 따라가는 것인가. 며느리와의 사이도 좋아야지 그렇잖으면 앙갚음을 당하기 십상이다. 돌보는 노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일이다. 며느리가 내 아들과 살아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누가 보면 자식이 결점이 많아 그런가 싶겠지만,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며느리도 내 가족이 된 이상 똑같이 사랑해 줘야 좋은 일이지.


내가 큰 병으로 입원했을 때 아들 부부는 직장에서 얼마간의 휴가를 내서 나의 간병을 한 적이 있다. 자식한테 폐 끼치는 일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나 건강만은 장담할 수 없으니 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요즘 내게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일이 많아졌다. 건망증이 심하다. 어머니처럼 치매가 덮칠까 은근히 두려워진다.



바람소리

지은이: 양순례


추워진다

소리도 커진다


불어대는 찬바람

힘찬 보일러 소리

새벽을 깨운다


호흡을 건너뛰며

숨 고르기 하다가

어둠을 가른다


흔들리는 낡은 창문

사이로 찬기와 온기가

숨바꼭질 한다


오장육부는 회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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