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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Jan 04. 2024

산야초

산야초를 생각하면 지리산이 떠오르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산야초가 떠오른다

시들부들한 산야초가 누렇게 뜰 판이다. 

배낭에 갇혀서 나처럼 차멀미를 했나 보다. 마음이 급해진다. 하루를 넘기면 안 될 것 같다. 피곤한 내 몸보다 산야초에 더 신경이 간다. 쏟아놓으니 양이 많다. 삶아내는 시간도 꽤 걸린다. 설레어 들떴던 생기는 간데없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맘 같아선 내박쳐 놓고 싶다만 이것들도 나의 피해자가 아닌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공기 좋은 지리산에서 너울너울 행복을 노래하고 있을 터였다.


종류별로 삶아 끼리끼리 봉지에 담아서 냉동실에 밀어 넣고 나서야 기진맥진한 몸을 침상에 부렸다. 생각지도 않고 호기심에 따라갔다가 식겁(食怯) 했다. 지인의 제의에 쉽게 수락했던 게 경솔했다. 서로를 잘 안다고 한 것이 착각이었다. 그는 지속해서 역사탐방 여행을 쉼 없이 다녔다. 나는 산행을 하지 않은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도 날다람쥐 기질이 남아있는 걸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과거의 힘을 믿은 탓인가. 무엇이든 꾸준함에는 당해낼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보다 항상 뒤처져 산행하던 그였는데. 이제는 뒤바뀌었다.

산야초 동호회는 나처럼 막연히 호기심으로 오는 곳이 아니었다. 자연에 관한 취미가 같고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산야초를 만날 때마다 회원들이 지도 선생님에 둘러싸여 귀를 세우고 설명을 듣는다. 산야초 종류대로 이름과 효용성, 채취시기, 먹는 방식 등을 알려준다. 점심은 갖가지를 채취한 산야초를 즉석에서 데쳐 커다란 양푼에 넣고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한데 넣어서 척척 비벼 먹는다. 참가비만 내고 맛있는 밥은 공짜로 얻어먹었다.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색다르게 먹어보는 신토불이 자연밥상이었다. 첫날은 그렇게 도란도란 체험하는 식으로 산야초 공부를 했다.


모닥불 피우고 엠티 같은 밤엔 약초 넣은 닭백숙으로 몸보신도 하고, 황토 방에서 잠도 잘 잤다. 기분 좋게 영양 보충과 찜질도 했으니 다음날도 유쾌한 기분으로 임할 것으로 여겼다. 본격적으로 산야초를 채취하러 오르락내리락 빡빡한 일정이었다. 시나브로 피로가 몰려왔다. 싱그러운 유월의 지리산 자락에서 즐거웠던 풍미는 서서히 사라지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첫날 갈 때와는 달리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심하게 차멀미까지 했다.

체력 유지를 위해 꾸준한 운동을 멈춘 대가였다. 가자고 한 지인은 내게 미안해하고, 나는 덜컥 따라가서 그에게 송구스러웠다. 육신은 한결같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동호회에 참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서서히 멀어진다. 그에게 자칫 폐를 끼치고 다른 이들한테 불미스러운 마음을 심어줄까 두려워서다. 예전에 등산할 때 보면 크고 작은 사고로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에 긴장했다.


산행할 때 다른 사람과 보폭을 맞추려 애쓰면 안 된다. 마라톤 할 때처럼 나만의 페이스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 함부로 장거리 산행에 나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일로 가볍게 다녀오는 건 몰라도. 일박을 한다는 건 무리라는 걸 깨닫는다. 한 달여 동안 운신하기 힘들었다. 산야초들도 얼어붙은 냉동실에서 바짝 웅크리고 있으면서 한 달여간 서로 눈치만 보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이루어진다는데 산야초들은 나를 만난 것이 불행이다. 냉동실 문을 열어보고 닫기를 반복했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성싶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다녀야지 다리 떨릴 때는 이미 늦다는 말처럼,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 고지를 휘젓고 다니던 전성기를 떠올린다.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을 종일토록 등산하던 때가 풀기 있는 날들이었다. 생각과 말로는 젊게 산다고 자부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리부터 두리번거린다. 길을 걷다가도 쉴 곳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자세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으려 하고, 티 내지 않으려 옷매무새도 신경을 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내가 건강관리를 잘하는 줄 안다. 다듬이질 잘 된 빳빳한 모시옷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우울해할 것까지는 없다.


쌩쌩한 척이라도 해야지 풀기 없이 부들부들해서야 되겠는가. 때마침 장날 도토리 묵사발을 보니 별안간 입맛이 당긴다. 평소에는 즐기지 않았던 음식이었다. 모여든 사람들처럼 나도 주문하고 묵사발 앞에 앉았다. 깨물 것도 없이 후루룩 잘 넘어간다. 끊임없이 말아내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연세도 있어 보이는데 장날마다 신수가 여전하다. 풀기가 있고 없고는 나이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아마도 이장 저장 쉬지 않고 다녔기에 몸에 밴 것이리라.


묵사발이 되었던 내 몸은 꾸준하지 못한 탓이다. 매사 꾸준함보다 더 큰 무기가 어디 있으랴. 씩씩하게 묵사발을 말아내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힘을 받는다. 몸은 꾸준히 써 줘야 건강하듯이 삶에도 꾸준함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을. 그녀의 손맛 덕분인지 내 몸이 우선해져서인지 기분 좋은 웃음기가 감돈다.




아하, 그렇구나

지은이: 양 순 례


승객이 붐빈다

천정 고리 잡고 섰다

창밖을 응시할 때


"할머니"

멀찍이서 들리는 소리


"할머니~

귀 어둔 노인인 갑다


"할머니"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저 금방 내려요, 저기 앉으세요"


그러니까 할머니였나 봐, 내가

아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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