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순례 Jan 06. 2024

이팝꽃(눈꽃)

이팝나무 꽃이 꼭 쌀가루에 버무려놓은 쑥버무리 같다는 생각

꽃 피는 봄에 세상에 오셨다가 눈 오는 겨울에 세상을 하직하신 어머니를 두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다. 입하 무렵에 핀다 하여 입하나무였다 변형된 게 지금의 이팝나무가 됐다지. 꽃은 4월부터 급하게 피어댔다. 이팝나무 꽃은 국수 색 꽃잎이 길쭉길쭉하고 눈을 뒤집어쓴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눈꽃 나무라고도 하나보다. 그러나 내 눈에는 하얀 밀가루를 훨훨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때가 떠올라서였을까. 쌀이 귀하던 시절 국수 똑똑 분질러 나물 넣고 풀떼기처럼 끓이기도 하고, 쑥을 뜯어 밀가루에 버무려서 끼니로 때웠다. 요즘은 쌀가루에 맛있게 별미로 만들어 먹는 쑥버무리가 보릿고개 때는 생계유지로 대체했다.


언뜻 이팝나무 꽃이 꼭 쌀가루에 버무려놓은 쑥버무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다. 이맘때가 되면 유난히도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병든 남편을 앞세우고 어린 자식들과 막막한 삶이었다. 그러나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쑥버무리를 만든 날에는

"야 이 먹어봐라 맛나다"

미리 만나다고 말해준 말에 맛있게 먹었던 어린 시절. 달달한 사카린 맛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동생 입에도 내 입에도 번갈아 넣어주셨던 엄마 냄새 맡고 싶다. 부얼부얼 매단 밀가루 색 이팝나무 꽃을 보면 어머니가 한없이 보고 싶다. 내가 살면서 힘들어하면 밥만 있으면 산 다는 말이 아련하다.


쌀이 흔한 현실은 쌀밥이 몸에 좋지 않다 하여 잡곡밥을 골라 먹는다. 굶주리지 않는 세상에서 사니 못 사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울 어머니 세상과는 참 대조적이다. 나 또한 어머니 삶에 비하면 부유함에도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끄러운 삶이었다. 이맘때 쑥버무리를 해서 먹거나 이팝나무 꽃을 볼 때면 어머니의 힘들었던 삶을 회상한다. 그녀의 혼백처럼 하늘하늘 매달린 이팝나무 꽃은 환생해서 이 딸을 만나러 온 듯하다. 어머니가 계시는 영락 원 길에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소복소복 피어대는 이팝나무 꽃은 우리 어머니 꽃이라 칭하고 싶다. 오월의 바람결에 눈 시리도록 하늘하늘하다.


이제 어머니는 기력이 쇠약해지셨다. 오랜 잠에 취해계신다. 깨우지 않으련다. 쉬실 때이다. 오래오래 편안히 주무시도록 내버려 둘 참이다. 어머니라는 이름 하나 이팝나무 꽃길에 새긴다. 오랜 세월 어머니와 함께 했던 딸의 눈은 이팝나무 꽃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꽃,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그녀도 풋풋한 때가 있었으련만. 오직 고난과 자식만을 위해 한평생을 소진하셨다. 꽃구경 대신 꽃밭에 잠든 영락원의 사위가 스산하리만치 적막하다.

“어머니!”

말문은 막히고 눈시울만 출렁인다. 평생을 딸과 손자들을 보살펴야 했던 모진 세월이 시리도록 아프다. 돌봐준 만큼 보람을 느끼셔도 된다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오월이 어머니의 마음처럼 포근하다. 파란 하늘도 강물처럼 잔잔하다. 어머니를 뵈러 올 날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핑계로 늦어졌다. 어머니 나이로 달려가는 딸의 발길이 점점 멀어진다. 눈보라 치던 날 손자가 할머니 영정 들고 이곳에 오던 날이 엊그제만 같다. 분묘나 봉안은 여간 답답하지 않을 거 같다. 난 죽으면 화장해서 산에 뿌리라 해야지. *갓털이 달린 바람씨처럼 훨훨 날아다니게.


*씨방의 맨 끝에 붙은 솜털 같은 것.



비 맞은 이팝

지은이: 양순례


보슬비 먹은 이팝 풀 죽은 그거 같다

봄나물 쥐어뜯어 국수는 잘게 부숴

가마솥 한가득 끓인 울어내 표 국수 죽


도래상 둘러앉아 허겁지겁 퍼먹던

파랑이 머문 자리 꽃잎이 앉은자리

바닥에 후줄근하게 서로 붙어 젖는다

작가의 이전글 산야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