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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Jan 12. 2024

생각나서

무엇이든 꾸준한 진심은 언젠가는 알게 된다

마지막 한 해가 눈앞에 와 비춘다. 

가로수 잎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허옇게 뼈마디를 들어낸다. 터벅터벅 걷는 내 발걸음과는 달리 차들은 뭐 그리 바쁜지…. 쏜살같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간다.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바닥에서 낙엽들이 놀라 이리저리 펄럭인다.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려 열어보니 오래전 이름이 뜬다.

“웬일이래?”
“웬일이긴 생각나서 했지.”
“그동안 나는 안부 전화도 못했는데.”

마찬가지라며 그녀는 술렁술렁 이어간다. 코로나가 좀 우선하다 싶으니 변이 오미크론의 발생으로, 어린이집에 확진 자가 생기면서 일을 돕던 본인도 자가 격리 중이라 했다. 나는 은근히 미안함을 감추고 있는데 전화 반갑게 받아주니 고맙단다.

"당연히 받아야지 뭔 소리래"
"옥자는 아니더라고"
"에이 그럴 리가"

탐탁잖은 듯해서 끊었다며 내 기분을 살피는 듯했다. 오랜만의 전화 통화였다. 안 보고 안 들으면 자연 소원해지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다. 요즘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면 전화 통화라도 해야 관계 유지가 된다. 게다가 소식을 주고받지 않다가 별안간 전화하면 서로 간에 자칫 뻘쭘해질 수 있다. 사람 마음은 다 다르기에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아 참 아들은 여웠남?”
“장가 간지가 원젠디”
“왜 연락 안 했지?"
”계 끝 난는디 연락은 무슨“

계라고 하니 돈 계를 한 것 같은 감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모임 할 당시는 애경사도 잘 챙기면서 친목이 도톰했었다. 한데 나이들을 먹어가면서 아프고 죽고 하면서 해체가 되었다. 전화하는 민옥도 남편이 본향으로 떠났다는데 연락이 없다 보니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난날 기차여행도 참 많이도 다녔었는데, 하면서 추억을 더듬는다. 웃고 떠들던 겨울 바다에 갔을 때가 기억이 남는다며 그때를 떠올린다. 오랜만의 전화 대화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보게 했다. 횟집에서 모둠 회로 맛있게 먹던 일이며, 봄가을이면 전국 각지를 훨훨 다니던 그때가 좋았지, 하며 말을 이었다. 표현은 안 했지만 민옥은 혼자 사는 내가 부러울 때가 있었단다. 의견이 안 맞아 남편과의 갈등이 바코드같이 찍혀 지나가는지, 그때 사업을 늘리거나 말거나 잔소리하지 말 걸 그랬다고. 교통사고로 오래 중환자실에서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는 말속에는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생각나서 떠올려지게 마련이다. 가족도 친구도 있을 때 소통해야 하는데, 나 또한 그러지 못했다. 뜸하다 전화했다간 괜히 했구나, 또는 달갑잖게 받지는 않았는지 마지막 달력을 열두 번 바라보는 느낌이다. 망설이지 않고 생각나서 안부전화해 보고 싶어지는 십이 월이다. 어머니가 계시는 영락원에도 가보고 싶고, 죽었나 살았나 덕순이 민자 영자한테도 전화해 봐야겠다. 어찌 들 지내나 궁금하다.


새해가 오기 전에 우리 형님한테도 해 봐야겠다. 언제나 웃음기를 머금고 응대해 주는 친언니 같은 분이다. 연세가 있어 당신도 허리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데 남편까지 치매 초기 증상으로 염려가 된다고 했었다.

전화하니 “어!” 하는 게 여전히 웃는 모습이 느껴진다.

“형님이 생각나서 했는데 너무 늦게 했지!”
"뭔 소리야, 나도 마찬가지지.”

민옥이 내게 전화했을 때와 같은 분위기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만은 같다는 생각에 마치 만난 것처럼 포근했다.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가스 테라를 먹으며 대화 나누던 자리 같았다. 거리 두기로 삭막해지는 요즘 같은 날은 안부전화라도 하여 서로의 소식도 알고 지내면 좋을성싶다.


오래전 등산 회원 중에는 지금 날까지 카톡 문안을 영상과 메시지로 올려준다. 때론 지겨워 대충 보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한데 그 정성과 성의가 갸륵하기가 그지없다. 그의 메시지를 처음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들 혼사가 있다는 통보의 메시지였다. 우리 아들 때에 했던 부조금을 배로 넣어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부터였다. 명분 있는 메시지로 끝날 줄 알았던 내 맘과는 달리 지금까지 이어졌다. 몇 년째 할 수 있다는 열정에 탄복했다. 감사장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한데 도리어 감사장을 만들어 올렸다. 카톡 잘 받아주어 감사했다고. 풉! 살다 살다 카톡 감사장을 받아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웃자고 한 일이지만 내심 진심으로 감사하다. 

과연 하루도 빠짐없이 보내는 마음은 어떤 심정으로 보낼 수 있는지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생각 나서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올리는 카톡 스토킹 같다는 생각까지 갖지 않았던가. 좋지 않은 생각까지 한 내가 소인배가 된 셈이었다. 지금은 간간이 고마움을 토로하는 답신을 보내기도 하다만 매일같이 하지는 못한다. 영상과 메시지는 무익하지 않은 정도로 당사자는 심사숙고를 해서 보낸다는 것을 잘 안다. 한 번도 얄궂은 영상을 올린 다던가 심심풀이로 올리는 건 절대 아니다.


무엇이든 꾸준한 진심은 언젠가는 알게 된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운다. 새해에도 여전히 카톡 문안이 이어질 것이다. 만남은 없어도 고맙다고 다시 한번 꾸벅 지면에서 인사를 올린다. 이처럼 살아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만날 수가 있다. 하지만 이승을 떠나면 그리움만 짙어진다,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려주시던 대구 파티마병원 특진 담당 교수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살아야 해요. 어린 자식들이 엄마를 보고 있어요. 문득 이 말이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신다.



상사화

지은이: 양순례


내 님은 어데 있나


- 나 여기 있어


사방을 둘러봐도

없는


모습도 투명

소리도 투명

당최 모른다


내려다보는 상수리나무

- 바보,

바로 곁에 있구먼


가까우면서 멀고

멀면서 가깝다

배고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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