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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야 Jan 20. 2024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선생님들-02

유아교육 10년 현장 스케치


어린이집 교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 2014년부터 지금까지 한 직장에 몸담고 있다. 한 직장에 10년쯤 있다 보면 온갖 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아이들은 어느새 중학생으로 훌쩍 자라서 등하굣길에 가끔씩 원에 들러서 나에게 인사를 하고 가기도 하고 학부모님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분도 있을 정도로 난 이곳에서 터줏대감이 되어가고 있다.



본업은 영유아들을 보육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 세계에도 수많은 인간관계가 얽히고설켜있다. 좁게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동료들과의 관계, 원장님과의 관계, 넓게는 학부모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이 수많은 관계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고 있다.



다행히 나는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원을 거쳐간 원장님들과 사이가 좋았고 동료 교사들과도 큰 마찰 없이 원만하게 지냈으며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과도 돈독하게 지내며 비교적 무탈한 직장 생활을 해왔다. 인복이 많음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장 특성상 여자들만 있는 곳이라 바람 잘 날 없을 때도 있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인격 수양이 덜 돼서, 성향적인 문제로,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고 텃세를 부리며 동료와 원장님, 학부모님들을 힘들게 하는 분도 있었지만 10년 동안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고 서로 어렵거나 힘들 땐 도움도 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웃으며 지내왔다. 무엇보다 아이를 정말 사랑해서 이 힘든 일을 선택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들이 많았다.



현장에서 종일 울어대는 아이를 업고 어르고 달래고...

아이가 행여 어디가 아프진 않은지 수시로 체크하며 열과 성을 대해 아이를 돌보고...

본인은 편하게 앉아서 점심을 못 먹어도 아이들 쫓아다니며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챙기고...

배변 훈련이 덜 된 아이가 속옷에 똥을 왕창 싸도 묵묵히 치우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활동이 뭘지 고민하며 수업 준비, 행사 준비로 퇴근 시간도 반납하고...

학부모님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편하게 맡길 수 있도록 사소한 요청에도 귀를 기울이고...

선생님들은 지하에서 4층까지 계단으로 다녀야 하는 어린이집에서 잠시라도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어떨 땐 날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순간 이동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1층에 있던 분이 몇 초 만에 4층에 있는 걸 보면 말이다...ㅎㅎㅎ



그나마 요즘은 처우가 조금 좋아져 아이들 낮잠 자는 시간에 휴게 시간이 생겨서 숨 쉴 틈이 좀 있지만 예전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 보육하기, 일지 쓰기, 다음날 수업 준비하기, 청소하기, 회의하기, 상담하기, 때마다 돌아오는 행사 준비하기 등으로 한시도 여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주임 교사를 맡은 몇 년 동안은 내 퇴근 시간은 거의 8~9시였다. 우리 반 일은 물론 원 전체 일을 원장님과 상의해서 돌아봐야 했으니 그 일들을 다 처리하려면 오후 6시는 턱없이 모자랐다.



3~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평가인증이 있을 때는 교사 전체가 초긴장 상태다. 평소에 잘하고 있을지라도 외부에서 우리 어린이집을 평가하는 중요한 날이고 보니 몇 달 전부터 원 전반적인 것을 빠짐없이 돌아보고 부족한 점은 없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 와중에 아이들 보육은 여전히 신경을 써야 하고 평상시에 해야 할 일들의 강도는 줄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피곤한 주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부모 참관 수업 때 참여하신 학부모님들은 깜짝 놀라며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아이 한 명 보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혼자 다 보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존경스럽습니다."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모습을 직접 경험해 보신 학부모님들의 태도는 그때부터 존경 모드로 급격히 달라지기도 한다. 



해마다 아이들이 줄어가는데도 아직도 아동 대 선생님의 비율은 그대로이고 보육하는 업무 외에 행사 준비, 행정적인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때마다 들어야 하는 각종 의무 교육과 직무 교육에 치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때론 학부모님들의 각종 민원에 시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학부모에게 똥기저귀 세례를 받았던 세종시의 한 선생님의 이야기는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이 땅의 선생님들. 모두 참 대단하신 분들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어려운 일을 우리 선생님들이 몸이 부서져라 희생하며 해내고 있다. 


당신들의 수고로움으로 인해 이 땅의 아이들이 그 사랑 먹고 쑥쑥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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