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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야 Feb 05. 2024

세 살 아이에게 독서를 배우다-03

유아교육 10년 현장스케치

34개월 된 ○○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등원할 때도 놀이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늘 책과 함께 한다. 농구를 할 때도 한 손으론 공을 잡고 골대에 골을 넣으면서도 다른 한 손엔 꼭 책이 들려있다.


아이들이 강당에서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고 고성을 지르며 뛰어다닐 때도 ○○는 그 소음 속에서도 독서에 집중한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을 통달한 고수의 모습 같기도 하고 외딴 섬처럼 고독해 보이기도 해서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놀이를 하고 잠시 쉬어가는 타임에 독서를 할 때, ○○는 반대로 신나게 독서를 하다가 잠시 쉬려고 뛰어놀곤 한다. 



어린이집에 처음 입소하고 신입적응기간을 거치는 동안 잘 놀던 아이들도 막상 엄마와 떨어지게 되면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경우가 많다. ○○ 역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홀로서기를 하는 날, 엄마를 찾으며 목청 터져라 울어젖히며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를 부렸다.


얼러도 보고 먹을 것으로 회유해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아이는 악다구니를 쓰며 오히려 더 막무가내로 울었다. 아이의 계속된 울음소리에 지쳐갈 무렵 혹시나 하는 생각에 ○○ 앞에 책을 슬쩍 갖다 놓았더니 세상에나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는 우리 어린이집에서 독서광으로 통했다.


해가 바뀌자 그새 말도 늘어서 발음이 명확하진 않아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누가 내 머리에~" 하고 선창을 하면 ○○는 바로 이어 "똥 쌌어~~"로 화답을 한다. 교사가 "황금알을 낳는~"하고 또 선창을 하면 ○○는 "달걀~~"하고 추임새를 하듯 맞장구를 쳐준다. ○○와 책 제목 알아맞히기 배틀을 하면 이길 친구가 없어보인다. 


○○가 동화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용을 척척 말하고 책에 나와있는 동물들 울음소리도 거의 흡사하게 흉내 내며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가 책을 읽고 있으면 반 친구들도 놀이를 하다가도 어느 틈에  ○○ 옆으로 다가와 하나 둘 책을 펴고 잠시 동안이나마 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이 시기 연령대 아이들은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한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도 책을 좋아하게 되어 이 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애독가(?)가 되고 있다.



고작 세 살짜리 아이이지만 나보다 더 고수의 향기를 풍기는 진정한 독서광의 찐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된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나의 꼬꼬마 스승님 ○○. 몸집은 작지만 책을 사랑하는 깊이와 몰입감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작은 스승님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진정 책을 좋아한다면 이 아이처럼 늘 책과 함께 하며 온전히 책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 장이 무슨 내용인지 알 정도로 내가 종이가 닳도록 읽은 책은 뭘까? 과연 그런 책이 있기라도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나는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내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서 내가 배워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스승님은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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