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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3)

by 칠월 십일일 Feb 24. 2025

추행을 당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끔찍하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 나를 지키기엔 성인 남성의 힘을 감당해내지 못하여 끌어안은 팔 안에서 그와 몸이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고 소름 돋았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고 힘껏 그의 팔을 밀어내려 몸부림쳤지만 아무 미동도 하지 않던 그의 팔을 떠올리면 그 순간 무력한 나를 마주하며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가에 대한 생각과 끔찍한 촉감들을 느끼고 있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게 몇 시간의 사투와 절망 후 영훈이 잠들었다.


그 기회를 틈타 영훈이 충전해 주겠다고 가져가 자기 베개 밑에 숨겨둔 내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꺼내 안방 문을 나서며 카카오 택시 앱을 켰다.


위치는 내 위치로 설정하고 도착지를 검색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너무 놀라 휴대폰을 감추고 뒤를 확 돌았더니 영훈이 내게 팔을 뻗으려 하고 있었다.


“… 뭐 해?”

“화장실.. 화장실 갔다 왔어요..”


“그래? 그럼 다시 들어가자 핸드폰 줘 “


나는 탈출하지 못하고 또다시 그에게 잡혀 안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또다시 추행이 시작되고 끔찍한 새벽을 지나 아침이 왔다. 시계를 보진 못했지만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쨍한걸 보니 7시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영훈은 아무렇지 않게 잘 잤냐며 물어보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안방에 홀로 남겨진 채 지금이라도 도망칠까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아침이고 영훈도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제는 더 나에게 어쩌지는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택시앱을 끄고 녹음기를 켰다.


신고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뭐라도 증거를 남겨놔야 남들이 내 말을 믿어주겠구나 싶었다.


-녹음기 ON-

어제 기억나요?

“응.. 어제 술 많이 먹긴 했지 “

어제 음주 운전하고 제 집 찾아오셨잖아요

“그랬지.. 아 머리 아프다 급식에 콩나물 국 나왔으면 좋겠다”

어젯밤에 방에서 일도 다 기억나요?

“응 다 기억나. 그 얘기 그만하고 빨리 따라 나와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

- 녹음기 OFF-


증거로 삼을 이야기들을 유도하려고 계속 질문을 하려했지만 끔찍했던 어제의 상황을 영훈의 앞에서 꺼내려니 심장이 떨려서, 오히려 내가 기억 안나는 척 없었던 일인척 동조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겉도는 얘기만 물어볼 수밖에 없어서 쓸모 있는 내용은 이 정도가 끝이었다.


영훈은 나를 집 앞에 내려다 주고 학교로 향했다. 그가 일하는 초등학교는 내 집에서 차로 2분 거리였다


나는 내려준 주차장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집에 들어가 온몸을 박박 씻었다. 씻으면서도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며 빛에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빛을 계속 응시했다.


그 와중에 계절학기 강의를 들으러 발걸음은 학교로 향했다. 정신이 멍한 채로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는데 그때서야 어젯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 지 심각성을 알 수 있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급하게 눈물을 닦고 화장실에 가는 척 복도로 나왔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옥상으로 올라가 영훈을 함께 아는 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눈물과 함께 쏟아내며 말했더니 언니가 너무 놀라 달래주었다.


그렇게 나는 스물둘에 실습 담당 선생님에게 끌려가 겪지 않아도 될 ‘강제추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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