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다 그 의미
나는 신장 175cm이다.
어려서부터 늘 내 키는 화제였을만큼 나의 키는 항상 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68cm였고 심지어 20살을 넘기고도 3cm가 컸다. (키를 확인하는 순간 난 기계를 때려주고 싶었다.)
키가 큰 덕분에 항상 뒷자리는 나의 차지였고, 여중과 여고를 다니는 동안 항상 학교 힘쓰는 일은 빠지는 적이 없었다. 늘 ‘수진이랑 거기 몇 명 이리 와 봐~’가 선생님들 단골 멘트였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운동신경은 없어서 긴 다리와 큰 키에도 불구하고 체육대회에서는 언제나 응원담당이었다.
크다 – (형용사) 사람이나 사물의 외형적 길이, 넒이, 높이, 부피 따위가 보통 정도를 넘다
모두들 나의 키를 부러워하였지만 그 덕(?)에 나는 긴 팔, 긴 손가락, 긴 다리 그리고 키와 더불어 큰 발로 늘 불편함을 겪었다.
바로 ‘쇼핑’에서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동서고금 노소를 불문하고 즐기는 그 쇼핑이 나에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모든 게 짧고 작았다. 예쁜 보세 옷이라도 살라치면 나에게는 언제나 작.았.다! 심지어 긴 손가락 때문에 장갑마저도 사기 힘들었다.
옷도 옷이지만 가장 문제는 신발이었다. 운동화를 즐겨신던 고등학교까지나 대학교 1학년까지는 괜찮았다. 멋도 내고 폼도 잡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니 내 발에 맞는 구두를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친구들은 지나가다가도 예쁜 신발이 있으면 사고, 세일하는 구두도 골라 이리저리 예쁜 구두를 사 신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다.
”아니 키가 크면 발도 큰 게 당연한데! 왜 여자 신발은 항상 작게만 만드는 거야?“ 라고 열변을 토해도 봤지만 현실 속에서는 늘 사이즈 벽에 걸려버리곤 했다. 어쩌다 만나는 맞는 사이즈 신발은 예쁘지가 않았다. 한참 멋을 내고 싶은 나이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이쯤부터 나의 발은 나에게는 원망과 부끄러움의 존재가 되어 갔다. 그리고.... 내 발은.....
수난 시대-인고의 시간
우연히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정말 맘에 드는 구두를 발견했다. 마침 여름이라 새하얀 구두를 사고 싶었는데 보석도 있는 햐얀 구두를 본 것이다. 엊그제 산 옷과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신발가게로 들어 간 나는
”이 신발은 사이즈가 몇까지 나오나요?“
부터 물어보았다. 벌써 등줄기에 땀이 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250이요“
라는 직원의 말에 난 흡족히 웃으며 신발을 달라했고 당당히 내 발을 넣어보았다. 헉! 뻑뻑했다. 등줄기에는 땀이 흐르고 난 필사적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발 볼 넓혀드릴게요“
라며 직원은 웃으며 나를 안심시켜주었고 나는 하얀 구두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신발에 발을 맞추어 신기 시작했다. 발이 불편해도 걷기가 좀 불편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발의 수난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나의 최대 콤플렉스 대상이 되어버렸다.
쉼 그리고 마주함
그렇게 나의 20대는 지나갔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 바로 첫 아이를 갖게 되고, 2년 터울로 둘째 아이까지 갖게 된 나는 한 동안은 구두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다. 가장 편하게 운동화만 신었으니까. (물론 운동화도 여성화 쪽에서는 사기 힘들었지만)
둘째아이까지 모유수유가 끝나고 6개월쯤 지난 추석 명절 쯤 나는 5년여 만에 처음으로 구두를 신게 되었다. 그때의 감격스러움이란... 눈물이 날만큼 울컥하고 가슴이 뛰었다. (내가 감성적이라는 말은 많이 듣는 편이다.) 웨딩 촬영을 위해 샀던 구두여서 더욱 그러했을지도... 그날을 기념하느라 사진도 찍어놓았다. 구두를 신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구나! 문득 내 발에 고마워졌다. 내 큰 키와 무게, 아이를 업은 무게까지를 지탱하고 무사히 지내 온 지난 날의 내 발이 말이다. 크다는 이유로, 맞는 신발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고 미워했던 내 발이 참 안쓰러워졌다. 맞지 않는 신발 속에서 힘겹게 버텨낸 지난 날도 미안해졌다. 어쩌면 나의 숨기고 싶은 면을 발에게 미루어서 미워했을지도..... 내 자신을 좀 더 사랑해 주지 못함도 미안해졌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되고 나니 세상이 참 좋아져서 다양한 인터넷 쇼핑몰이 나왔고 드!디!어! ‘큰 신발 쇼핑몰’이 생겨났다. 거기에 ‘직구’까지 눈을 뜨게 되었다. 오~~예!! 나는 아이를 재우고 매일 밤 신발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물론 장바구니에 담고도 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오히려 결정 장애가 온 것이다. 검은 색 이외에 별로 신어 본 적이 없는데다가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이 넘치는 쇼핑몰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매일 밤 망설이다가 드디어 결정을 했다. 그 동안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었던 내 발에게 당당하게 화려함을 입혀주기로... 내 선택은...빨간장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오는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내가 가장 부끄러워했던 발을 꾸미고 산책하리라!
그리고 당당히 얘기하리라. 내 발 사이즈는 260cm라고!
이것이 끝은 아니였도다!
나에게는 아들이 둘이다. 내 우월한(?) 유전자 덕분에 두 아들 모두 키가 크다. 그런데! 큰 아들이 시작했다. 내가 겪은 신발 수난기를..... 발볼은 아빠를 발길이는 엄마를 닮은 내 아들. 성장 속도도 빨라 신발 교체 주기가 빠른 우리 큰 아들과 난 신발 매장을 여전히 헤매고 있다. 아들아! 미안하다. 유전자의 힘이 이리 크구나.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두 아이가 아들이어서 말이다.
에필로그
나의 몸,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없는 ‘발’에 대해 이리 자세히 쓰는 날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자랑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소재도 아니니까.
하지만 쓰는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지난 날에는 부끄러웠고 얘기하기도 싫어했던 ‘나의 발’이야기를 쓰면서 웃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라 여겨지는 건지, 이제는 나의 몸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에 넉넉함이 생겼다는 사실.
부끄러움을 시작한 이 작업이 생각보다 즐거운 과정이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