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에 드러나는 내면
내면은 감추고 꾸며도 어느 지점에선가 드러난다. 마주하는 동안 내내 어딘가 불편하고 이질적인 괴리감이 느껴지다가도 그 사람의 내면과 합치되고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제 도서관 가는 길에 칼국수집을 발견했다.
매장이 카페처럼 깔끔해서 부모님과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식하러 들어갔는데 날이 더워서 그만 '표고버섯 비빔 칼국수'를 주문하고 말았다.
매운 입을 진정시키려고 육수를 한 모금 마셨다. 음? 기가 막히게 맛있다? 갈수록 기묘해진다.
이렇게 맛있는 육수로 왜 칼국수집을? 리뷰를 추적해 보니 주인분이 사골 만두를 하시던 분이다. 업종을 칼국수로 바꾸셨단다. 검색해 보니 한식조리명인이란다. 뭐 그런 거다. 어떤 사정으로 기묘한 비빔 칼국수를 내주셨고 칼국수로 업종을 바꿨지만 그 속은 사골 만두다. 비빔 칼국수에 딸려 나온 육수 한 모금으로도 눈치챌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 어떤 강좌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님을 뵌 적이 있다.
제대로 사고하는 사람의 내적/외적 일관성에서 오는 정갈함이 있었고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진중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오래전에 스쳐 지나간 평범한 할머님의 그런 분위기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증거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우린 외적인 면을 떠나 한 사람의 내면에 민감할 수 있다. 우린 내면을 감출 수 없다.
- 브런치에 글을 긁적이다 보니 최근에 점심식사 초대를 거절했던 게 떠오른다. 사람과 거리를 두려는 내면의 두려움과 옹졸함을 감추려고 거절했는데 오히려 드러낸 꼴이 되었다. 뭐 그런 거다. 내면은 감출 수 없다.
내면을 온유하게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