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르바이트에 도전하는 일은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이곳에서 나는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이 분들에게 나는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있구나'를 머리가 아닌 말과 눈빛으로 그리고 피부로 직접 느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일용직으로 많은 곳을 도전하고 전전하면서도 내가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넓어지는 것에 매번 기쁨이 넘쳐흘렀다.
여섯 번째 아르바이트로 추모공원 주차안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요즘 봉안당들은 고인을 모시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멋지다
육체적으로 편한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주차안내 일은 언뜻 편해 보였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2만 걸음을 넘게 걸었고 매연으로 눈코는 맵고 목은 금세 칼칼해졌다. 보이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구나 싶었다.
아르바이트했던 추모공원은 유명한 분들이 영면하는 곳이라서 좋은 차들이 많이 들어왔다. "내가 이런 차를 타는 사람인데 감히?", "이런 나인데 역주행 정도는 특별히 봐줘도 되잖아?"처럼 뒤틀린 특권의식을 갖고 차와 본인을 동일시 여기는 분들에게 호되게 당하는 일이 간간히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경차를 탄다고 무시하는 거야?"처럼 열등감에 차와 본인을 동일하게 여기는 분의 괴롭힘도 있었다.
두 가지 모습 모두 내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비대한 자아를 가진 그런 인간이란 걸 되새겼다.
수백천대의 차량을 보고 있자니 평소엔 눈이 휘둥그레질 좋은 차량이나 경차나 똑같게 느껴졌다. 차는 차일 뿐이었고 사람도 사람일 뿐이었다.
좋은 차를 타는 사람도, 경차를 타는 사람도, 히키코모리에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도, 우린 모두가 20여 센티미터의 함에 담겨 인생을 마감할 똑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특권의식에서든 열등감에서든 화를 내시는 분들이 밉질 않았고 상처받질 않았다.
멋진 분도 만났다. 저 멀리 주차하셨는데 일부러 오셔서 친절한 안내 감사하다며 향긋한 커피를 주신 여성분이 계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 종이컵이 두 겹이었다. 뜨거울까 봐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것이 느껴졌다.
'아. 이런 분이 친구라면 참 좋겠다' 싶다가 내가 다른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렇게 누군가에게 특별한 마음과 다짐을 부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것이 사람을 바꾸는 힘이구나...
지식을 쌓고 권력과 부를 움켜쥐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사람을 감화시키고 선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아니다. 아마도 인스타에 똥칠하며 우쭐댈 것 같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일은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겐 무리다.
제대로 된 사람이 되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청소를 하면서 수많은 고인분의 모습, 추억이 담긴 사진, 그분들의 특별한 소지품을 보았다. 어린아이도, 한창인 젊은이도, 대단하고 훌륭하신 어르신분들도 종착지는 같았다. 덧없는 인생에 특별하고 싶고 무언갈 남기고 싶은 욕심이 대비되는 차분하고 고즈넉한 광경이었다.
인생에서 무얼 남긴다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이란 생각도 들었다.
추모공원은 별 일 없을 때 몇 번씩 들르고 싶어졌다. 죽음을 자주 보기만 해도 허튼 짓을 안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엔부모님과 살아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일곱 번째는 대형 물류센터였다.
광활한 땅에 엄청나게 큰 건물들이 여러 곳에 지어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몰려나오는 것을 보면서 을지로와 강남에서 점심시간에 몰려나오는 직장인들이 연상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혹자는 인생의 종착지에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물류센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으로 느껴졌고 같은 인생으로 느껴졌다. 물론 소득 수준은 크게 다르고 정규직과 일용직에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일용직이기에 동일하게 여기고 싶을 뿐 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다양한 직무의 일이 있었고 눈코 뜰 새 없었지만 다들 파이팅 넘치게 재미있게 일했다. 오랫동안 일한 아주머님이 많은 일들을 알려주셨고 더 잘하라며 재촉하셨다. 불편하게 생각되었지만 결국은 아주머님의 말씀이 다 옳았다. 일을 수월히 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에게 편한 것을 감정으로 고집하지 말고 차분히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신 아주머님께 제대로 감사도 못 드리고 헤어졌다.
여덟 번째는 OO 창고였다.
근로계약서 비밀조항으로 내용을 적지는 못하지만 1주일마다 커지는 회사를 구경했다. 인력이 늘어나고 시설이 생기고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차량이 늘어나는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시스템의 부재로 야기되는 사람 간의 갈등을 목격했다.
갈등에 매몰되다 보면 우리의 문제가 아닌데 나와 그의 잘못 또는 감정 문제로 바라보기 쉽다는 것을 배웠다.
아홉 번째는 자전거 배달이다.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 무릎을 다쳤다. 그동안 많이 써왔던 손, 허리도 병원을 다니며 치료받고 있었는데 무릎까지 다치고 나니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욕심부리지 말았어야지. 무리하지 말았어야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회복하기 위해서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다 똑같고, 우울증에 히키코모리였던 나라고 특별히 거부되는 세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접 부딪혀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여러 번 반복을 통해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며칠 전, 예전 직업의 일로 정규직 제안을 받았다. 이전이라면 두려움에 거절했겠지만 이젠 담담히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어도 혹은 계속 일용직을 전전해도 난 매일을 감사하며 기쁘게 지낼 수 있을 것만같다. 물론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일도 많을 테지만.. 뭐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