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하고 말해

by 빛해랑

알다가도 모를 사람 마음이라더니 수십 년 산 남편 마음도 모를 때가 수두룩하다. 세상 유일의 내 편이구나 싶다가도 우주 밖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때아닌 장마처럼 몇 날 며칠 비가 왔었다. 빨래가 밀렸다. 하필 강아지 녀석 뭘 잘못 먹었는지 내 방, 딸아이 방 할 것 없이 이불 위에 잔뜩 토해놨다.


비 오는 날 해야 하는 빨래가 가장 싫다. 마른 건지 아닌 건지 만져보고 냄새 맡고, 향기 나는 세제 때려 넣어도 찝찝한 기분 어쩔 수 없다. 비 오는 날엔 '빨래건조기 한 대 들이자.' 결심하고, 날이 좋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또 미룬다. 갈대 같은 마음이라니.


비는 멈출 기미 안 보이고

빨래는 쌓이고.


날씨 좋아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편의점 옆 빨래방이라도 다녀왔으면 싶은데 모른척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비가 오니 건조기 있는 빨래방에 가고 싶은 것이고 이불까지 가져가야 하니 혼자서는 갈 수 없다. 마음이 흙 밭이라 하는 말마다 곱게 나오지 않았다.


"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말고 생각 좀 하고 말해."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는 '생각 없다.'라는 말이 싫다.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바보에게 바보라고 삿대질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격지심 같은 것이랄까.


"왜 사람 무시해?"

"듣고 싶은 말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 없는 사람 취급해.?"

"무슨 자격으로 자존감 뭉개는 건데?"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삼켰다.


'생각 없다'라는 말 들을 때마다. 욱! 하는 마음 참아지지 않는다. 생각했으니 말하는 거 아닌가.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말 아무렇지 않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한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야말로 생각하고 그리 말하는 걸까.


내가 얼마나 싫어하고 상처받는지 모르지 않을 터다. 경각심을 주고 싶은 게지. 고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효과는 일도 없다. 서운한 마음에 반항심만 커진다.


누구나 강점이 있고 약점 있기 마련이다. 내 약한 점은 말하기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하고 싶었다. 책이나 영화 속 인물들은 논리적이면서 상황에 딱 떨어지게 잘도 한다. 나도 멋지게 말하고 싶은데 암만해도 생각과 말이 따로 논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을 걸러내어 말할 줄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들은 간혹 나에 대해 아이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았을 것 같다 말하지만, 정작 나는 조급하고 다혈질이라고 생각한다. 내보이고 싶지 않은 약점이기에 스스로를 누르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러니 걸핏하면 콤플렉스를 들춰내는 남편이 고울 리 없다. 아무 말이나 뱉는 사람 취급 당하는 것이 싫다.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생각이 없어서 한말이고 그렇지 않으면 생각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다.


허물없는 사이일수록 "생각 좀 하고 말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이 말은 진짜 '생각 없다'라고 단정해 버리는 언어폭력이다. 특히 나처럼 말하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에겐 직격탄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격려의 의미가 있는 것도 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시'나 '상처'가 될 수 있다.


사람 마음은 거울과 같다. 내가 던진 말이 어떻게 돌아올지 알 수 없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포장해도 상대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말은 독이다.


오죽하면 남편 눈에는 생각조차 안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한 말이 상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자. 작은 망설임이 '평화'를 지키는 무기다. 안 그러면 맨날 전쟁터잖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