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친해지는 법

by 빛해랑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만화책 같기도, 수채화 같기도 한 책 표지가 화려하다. 요즘 트렌드인가. 내가 알던 서점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어느덧 세월의 뒤안길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서점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졌을까. 신기한 북 아이템이 수두룩하다. 읽은 책 한눈에 알 수 있게 기록해 두는 북 트래커가 눈에 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밑줄 긋기는 싫고 표시는 하고 싶을 때 요긴한 독서 스티커가 종류별로 다양하다.


얇은 필름 재질의 독서스티커는 참한 문장이나 단어 옆에 붙여두면 시간 낭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떼어내도 깔끔해서 소중한 책 망가질 걱정도 뚝! 라떼는 기껏해야 '포스트잇' 정도였는데.


그뿐인가! 종이책 접는 것을 극혐하는 꼼꼼한 독서가들을 위한 아이템도 있다. 작은 금속 조각이나 머리핀 같은 책 집게, 물방울, 오리 모양의 페이퍼 클립이다. 클립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다니!


특히 북 클립은 깔끔하게 표시할 수 있고 여러 개 꽂아도 책이 두꺼워지거나 손상될 일 없어 보였다. 책갈피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데,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알록달록 가볍고 얇아서 이건 나도 욕심이 났다.


입을 쩍 벌리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그 마음 알겠다는 듯 곁에 있던 딸이 말한다. "독서는 장비 빨 아니겠어?"


중고등학교 시절 책갈피를 만들어 썼던 기억이 난다. 깨끗한 종이를 책갈피 모양으로 자른 다음 사인펜 혹은 색연필로 꽃을 그리거나 만화에 나오는 공주풍의 여인을 그렸다. 문구점에 들고 가서 코팅하면 끝이다. 그 시절엔 그것도 참 소중하고 특별했었다.


깨끗한 종이로 표지를 감쌌던 게 최고의 사치였다. 어쩌다 문에 바르고 남은 새 문풍지를 엄마에게 얻어 표지를 입히고는 어찌나 흡족했던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버리지 못했었다.


부드러운 옷감 재질부터 가죽 느낌까지 다양한 북 커버가 즐비하다. 북 커버까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런 작은 소모품들이 독서의 질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치트키'라고 딸이 말해준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써보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낯선 그것들을 다 사지는 못했고 스티커 몇 종류와 초록색 북 클립 한 통을 사서 집으로 왔다. 마침 얼마 전 딸이 선물해 준 독서대가 있다. 독서대 옆에 장비?를 갖추고 책을 펼쳤다.


책과 친해지라고 만든 요 귀여운 물건들이 얼마나 친하게 해 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옛날 사람이라 옛 방식이 편하다. Z 세대인 딸아이는 애정하는 장비로 즐겁게 읽으면 그만이지.


문득 유명한 축구 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이 떠오른다. 그의 책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독서를 시작하면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세 가지 펜을 준비한다고 한다. 처음 읽을 때는 검은색으로 중요 대목을 긋고, 두 번째는 파란색 펜으로 반복한다. 세 번째 읽을 때에는 빨간색으로 핵심이 되는 내용을 체크하고 메모한다.


종잇장이 뚫릴 만큼 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한다. 삼독이 끝나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노트에 옮겨 적는다. 노트 한 권이 채워지면 읽고 또 다른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책은 버린다.


책을 버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 해진 탓도 있고. 책장에 꽂아두면 과시하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노트를 꺼내보면 그만이라고.


흠집 하나도 아까워하며 조심스럽게 다루던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책은 작가의 경험을 나의 일부로 만드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 처음으로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건 내 손에 들린 책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버리고, 얻는가이다! 그것이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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