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이 오래된 우리 집 차는 얼마 전 '초보운전' 딱지를 붙였다. 이유는 딸아이 때문이다. 딸이 운전면허증을 땄다.
폭염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던 지난여름 8월의 이야기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딸은 서울에서 네 시간 남짓 거리의 전라도 시골 마을에 한 달 살이를 떠났다.
몸이 아파 공부도 쉬고 아르바이트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유로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했겠지. 마음도 복잡하고.
막상 시골에서 지내려 하니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종일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연일 37~38도가 넘는 날씨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방마다 있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두 세대를 동시에 틀어도 아침의 불볕더위부터 저녁의 열대야까지 버티기 쉽지 않았을 터다.
딸은 찜질방 같은 집을 잠깐이라도 벗어날 방법을 찾은 듯 했다. "버스 타고 읍에 가면 수영장이랑 도서관이 있더라고." 그리고는 "이번 기회에 이곳에서 운전면허를 따볼까 해. 알아보니까 학원비가 서울보다 싸더라고."
운전면허 이론 수업을 월요일에 세 시간 듣고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문자가 화요일에 날아왔다. 주말에 곧바로 등록했던가 보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도로 주행 연수를 세 시간씩 두 번 했단다. 금요일에는 도로 주행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했다며 면허증을 받으면 끝이라고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장난하는 건가 싶었다. 운전면허라는 게 한 번에 따기도 하고, 여러 번 도전 끝에 따기도 하고, 본인 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따다니. 그렇게 딴 면허증으로 도로에 차를 몰고 나가도 되려나. 기쁨보다 불안감이 더 컸다.
8월 마지막 주에 남편과 나는 여름휴가도 보낼 겸 딸에게 갔다. 햇반과 생수병, 약간의 채소와 과일, 토퍼 하나와 얇은 이불, 딸은 최소한으로 먹고살고 있었다.
어지럽혀진 방 안을 치우다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도로 주행 만점의 비밀이 있었다. 도로 주행에 나서기 전 모든 도로의 상황이 눈으로 보는 지도처럼 세세히 적혀 있었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었다.
도로의 위치, 그곳의 신호등, 회전교차로의 위치와 그 안에서의 정확한 행동 요령(왼쪽으로 미리 진입 후 30미터 전 방향지시등 켜기, 차선 유지, 안전거리, 속도 유지 등)이 깨알 같은 글씨로 반 페이지 분량으로 여러 장에 걸쳐 적혀 있었다.
주행 연수 기억을 되살려 출발부터 주차까지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눈과 손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연습했던가 보다. 합격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했어?" 이왕 시작한 일이고, 다시 합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해서 그리했단다.
나는 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완벽주의 때문에 긴장하고 불안해서 그랬을 거라는 걸. 일곱 살에 처음 '공기놀이'를 배울 때도, 아홉 살에 '스키'를 처음 배울 때도 지독했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수학 시험 하나에서 답은 맞지만 풀이 과정에서 2점이 깎였다.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 따지고 며칠을 억울해했더랬다. 완벽하지 않으면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은 아이.
완벽주의는 불행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무언가 잘못되면 남보다 스트레스도 두 배다. 다 잘해야 하고 유능해야 한다는 강박을 놓지 못한다.
머지않아 딸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운전대 꽉 쥐고 도로에 나가겠지. 또 얼마나 실수 없이 잘하고 싶어 할지 벌써 눈에 선하다.
딸아! 아직은 네 인생도 초보 운전과 다를 바 없단다. 너무 애쓰지 마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조급해하지 말고 남들이 쌩하고 지나가든 말든 네 속도대로 가라. 쫄지 마라! 가는 길의 운전대는 네가 쥐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