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날

by 빛해랑

생활이 단순하고 행동반경이 좁은 편이다. 만나는 사람도 적다. 식구들과 몇몇 직장 동료가 전부다. 무슨 큰일이 생길 삶의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어제인 듯 그 며칠 전인 듯 오늘을 무심히 산다.


그러다가 이벤트처럼 아침부터 욕먹으며 옴팡지게 상처받는 날과 맞닥뜨린다. 힘든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며 진심으로 화내는 남편을 대할 때, 일도 생각도 본인 것이니 신경 끄라며 철벽 치는 딸을 마주할 때 말이다.


짙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런 날은 누군가의 눈빛 하나 행동 하나에도 그만 마음이 고꾸라진다. 바늘 같은 가시를 세우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녁엔 파김치가 된다.


따지고 보면 참 별것도 아니다. 아주 작은 가시 하나 박히는 느낌이다. 종일 신경 쓰여 안 되겠다 싶어 빼내고 나면 어느새 또 박히는 가시. 그냥 두면 더 큰 아픔과 상처가 되기도 하는.


이런 날은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지친 하루의 끝이거나 뭔지 모를 분노가 가득 찰 때 미칠 듯한 허기를 느낀다. 무슨 먹는 타령이냐 하겠지만 이상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어쩌면 잠깐이라도 근심을 잊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텅 빈 슬픔'인지 '배고픔'인지 뇌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오늘 힘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하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편의점에 간다. 하이에나처럼 쓸어 담는다. 그중에서 먹고 싶어서 산 것은 하나도 없다.


진정으로 삼키고 싶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쌓인 울분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을 불러올 뿐이다. 더부룩한 속은 또 다른 고통이다. 패배자 같은 자책이 몰려온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한가. 나를 보고 자라서 그런가. 딸아이도 간혹 폭식을 한다. "하! 인생 뜻대로 안 되네."라면서. 냉장고를 탈탈 털고도 배가 차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를 객관화하지 못하다가 내 모습 따라 하는 딸아이의 행동을 보니 비로소 알겠다. 죽자고 먹으면서 사실은 죽기 살기로 살고 싶었던 거였다. 사는 게 두려워서, 그럴수록 더 살고 싶어서.


심호흡을 하고 몸의 감각과 소리에 귀 기울인다. 폭식의 원인은 외부 환경이 아니다. 거울 속 초라한 모습에 좌절하는 내 자존감에 있다.


완벽한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며 사는 게 최선이다. 겁낼 필요 없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흔들리지 않고 살 길은 없다.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도 없다. 버티지 말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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