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그깟 게 뭐라고

by 빛해랑

시판용 절임 배추 20KG을 주문했다. '아차, 김치냉장고, 이럴 줄 알았으면 버리지 말걸.'


좁은 집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김치냉장고였다. 전원도 끈 채로 방치하다가 더 이상 쓸 일 없다 생각하고 작년 여름에 버렸었다.


시어머니의 김장 김치를 수십 년 넘게 받아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김치를 좋아한 기억은 친정 엄마 살아계실 때까지만 이었다.


어머님의 김치가 싫었던 건 아니다.김치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은 어머님의 김장 김치를 좋아했고 반찬 없는 우리 집 식탁에 소중한 일원이 되어 주었다.


어쨌든 어머님이 주신 김치는 당연한 것도 같고 사계절 넘쳐나는 김치였던 탓인지 귀한 줄도 몰랐다. 시어지거나 물러지면 아까운 줄 모르고 버렸다.


이제 어머님은 더 이상 음식을 하지 못하신다. 김치가 끊겼다. 간혹 가까이 사는 언니 또는 손윗 시누이가 보내줄 때 말고는.


언니나 시누이에게서 얻어먹는 김치는 이상하게도 편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점점 식탁에 김치 있는 날이 손에 꼽혔다.


그렇게 김치 없는 두 해를 보냈다. 막상 김치가 없어 보니 처치 곤란 취급받던 김치가 그립고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김장하는 엄마 모습을 보고 자랐다. 빠르게 움직이는 엄마의 손놀림, 진한 젓갈 냄새,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갓 버무린 배춧잎을 찢어 참깨에 한 바퀴 굴려 내 입에 쏙 넣어주던 엄마의 김장 김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올겨울엔 김장을 해보리라. 겨울이 깊어지자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까운 재료만 낭비하는 건 아닐까? 나는 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었다. '김장, 그깟 게 뭐라고.'


김장 경험이 있는 주변 사람들의 비법을 메모했다. 김장 고수들의 영상을 찾아 반복해서 봤다. 친정 엄마가 하던 방식을 떠올려도 봤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전자저울에 그램 수를 맞춰가며 재료 조합에 열중했다.


육수에 찹쌀 풀도 쑤고, 생새우와 새우 젓갈, 양파와 배를 갈아 넣었더니 그럴싸한 붉은 양념이 되었다. 무, 쪽파와 갓을 섞어 버무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정녕 내 손으로 만든 김치란 말인가.


겁이 나 벌벌 떨 만큼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 먹은 적 많지는 않지만 입에 맞지 않는 경험을 앞으로는 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재료와 정성 들인 김치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겁을 냈을까? 아마도 나는 엄마의 김치 맛을 낼 자신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엄마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 번의 경험이 두 번 되고 세 번 되는 반복에서 솜씨도, 맛도 늘었을 거라고.


수백 포기씩 했던 엄마가 보면 그야말로 껌이라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찬 손 입김에 녹여가며 배추 절이던 그 시절에 비하면 이미 절여 씻어 나온 걸 샀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김장 한 번이 뭔 대수인가 싶겠지만 그만큼 불안과 두려움이 컸다. 작은 성공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나 추켜세운다.


해보지도 않고 느끼는 두려움이야말로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나는 못 해', '해본 적이 없어서'라는 지난날의 말과 행동이 새삼 부끄럽다. 그냥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