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나를 사랑하기 위해 글을 쓴다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을 낸다
봄부터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생각이나 감정을 소소하게 기록하는 삶이 좋았다. 안정된 루틴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 것에 만족했다. 물은 흘러야 맑아지는 법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일상 글을 백일 동안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쓰려고 마음먹으니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 플랫폼에서 강의를 얼마든지 찾아서 들을 수 있었다.
'나도 글쓰기의 기술을 배워봐?' 내적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날이 몇 날 며칠이었다. 당장이라도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그 답을 얻기 위해 한참의 시간을 허비했다. 아니 허비했다기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간절함이 있는가를 생각했다.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한 단계만 더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 백 개만 써보고 결정하자! 경험해 보지 않은 결심은 또 흔들릴 테니까." 늦은 게 결코 늦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급할 게 없었다.
책을 읽고 후기를 쓸 때에도 생각이나 느낌을 넣어 글을 썼었다. 그래서 백 개쯤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보란 듯이 예상은 빗나갔다. 하소연만 하다가 끝나는 글인가 하면, 단순한 추억을 더듬다가 에세이 어디쯤에서 헤매다 길을 잃을 때도 많았다.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괴로웠다. 그러다가 문득 예기치 않은 시점에서 힘을 얻었다. 형편없는 글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글에도 단 한 사람일지언정 누군가는 응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글이 마음에 닿았을 수도 있고, 약점투성이의 내 나약함에 힘을 주고 싶었던 것 일 수도 있다.
글이라는 것이 읽는 독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누구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고 묻지만, 어떤 이는 나의 글이 힘을 되고 있으니 더 열심히 써보라고도 한다. 내가 버티기 위해 긍정적으로 바라봐 준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초보인 나는 판단하지 못한다. 다만 글을 쓰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싶을 뿐이다.
독서 모임 하나로도 만족하고 행복했던 나는 일상 글을 쓰면서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작은 글감이라도 붙잡으려는 이 태도가 진정 자연스러운 것인지가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절실함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굴곡진 대단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글을 쓸 만큼의 감성이 남다른 것도 아니지만 깊은 우물의 물을 다 퍼 올리고 바닥이 보이면, 어디선가 물이 새어 나오는 구멍이 보인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그 새 물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쓰는 여정이 없이는 영영 물길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매일 써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심이 올라온다. 멘털이 강하지 못해서일까. 자존감은 끝 모를 바닥으로 치닫고, 또 끌어올리기를 반복한다. 이렇듯 혼란의 상황에서도 희미한 등불 하나에 옷깃을 여미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읽어보면 글에서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알지도 못하고 인사 한마디 나누어 본 적이 없는 사이지만 써 놓은 글을 보면 내가 가까이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인지가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너무 잘 안다. 때문에 그 어떤 순간에도 자만이라는 단어를 경계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비록 문맥도 안 맞고, 이야기는 산으로 갈지언정 진심으로 쓰는 마음가짐이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할 것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서툴긴 하지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작은 내 노력이 단 한 명이라도 마음에 가서 닿는다면 포기하지 않고 쓸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