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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o Feb 22. 2024

정리되지 못한 삶은 먼지가 되어

요즘은 설거지가 좋아서

아침의 황금이라 불리는 사과를 씹으며 달걀을 두 개 깨어 밥그릇에 담고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불투명과 노랑이 적당히 섞여 연노랑 빛이 될 때쯤이면 통후추를 원하는 만큼 갈아 넣고 때에 따라 약간의 소금을 더한다.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져 자투리 채소가 남아있나 살피고 내일모레 하는 당근과 양배추를 찾아내 얇게 채를 썰어 달걀물에 넣는다. 사각사각 탁탁 적막이 가득한 부엌에서 약간의 소음을 내며 한 데 고르게 섞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약간의 열이 올라오면 기름을 두르고 고르게 부어준다. 타이밍을 잘 맞춰 촤악 소리가 나는 순간에는 약간의 쾌감이 인다. 

달걀 부침이 익어갈 동안 국 냄비에 불을 올린다. 인덕션은 자기가 원할 때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단은 내버려 둔 채 냉동실과 냉장고를 다시 열어 반찬으로 할 만한 것들을 모조리 꺼낸다. 엄마가 해둔 시금치, 도라지나물과 콩나물무침. 냉동실에는 커다란 봉지 안에 냉동만두가 3개 남아있다. 다 익은 달걀 부침을 그릇에 담고 열기를 간직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다시 둘러 만두를 올린다. 간단하게라도 할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있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집중의 시간이 좋다. 온전히 나를 책임지는 그 감각이 좋다. 마른행주에 물을 묶여 상을 한 번 닦곤 접시를 하나 둘 나른다. 밥은 많이 먹지 않기에 두 숟갈 정도를 떠 내 전용 밥그릇에 담는다. 음식을 조금 더 오래 씹으려 노력하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비워진 접시를 보며 슬쩍 홀가분한 마음과 부른 배를 잡고 빈 그릇들을 하나둘 싱크대로 가져간다. 키친타올로 접시가 머금고 있는 기름을 닦아낸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퐁퐁을 묶여 거품을 만들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사각 접시 동그랗고 넓은 접시 작은 밥그릇 짝이 안 맞는 쇠젓가락과 숟가락 나물을 담은 작은 반찬 그릇

싱크대 옆 건조 트레이에 어떻게 담아야 잘 정렬될까 고민하며 하나씩 거품을 칠한다. 착착 쌓여가는 그릇을 보며 어떤 완결성을 느낀다. 최근은 설거지가 좋아졌다. 이전엔 요리와 식사가 메인이고 설거지는 귀찮은 정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이 마무리인 설거지가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놓인 접시들을 보고 오늘 저녁은, 내일 아침은 뭘 해먹을까 고민한다. 요리 탓에 지저분해진 그릇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감각.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꽤 기쁘기까지 해서 이 감각이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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