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토모코 <위국일기>
두 번째로 소개드릴 만화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님의 <위국일기>입니다. 죽은 언니의 딸인 '아사'와 죽은 엄마의 여동생인 '마키오'가 함께 살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입니다.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준 뒤 장례식에서 서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강렬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 이후의 이야기를 바로 보여주지 않는 점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습니다. 저에겐 제 마음속 3대 만신(만화의 신)이 있는데요. 그중 한 분이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님입니다. 작가님의 책을 대부분 소장 중 이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꽂히는 만화는 그중에서도 처음이었던지라 책을 읽는 내내 이 작가님..어디까지 더 잘 그릴 생각이신 거지..하고 감탄을 연발해던 기억이 나네요.
마키오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자기 만의 세계, 가치관이 뚜렷한 마키오를 정말 좋아하는데 거기에 대해 아사(제3자)의 눈에는 그 모습들이 어떻게 비치는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동거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엔 그저 신기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마키오에 대해 생각하던 아사가 권수를 더해갈수록 여러 고민과 감정을 가지고 처음에는 좋다고 여겼던 마키오의 이런 부분에 대해 반항, 대립하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만화를 볼 때 비슷한 이야기라도 어떤 가치관을 가진 작가님인지 이야기의 어디에 집중시키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뭔지에 따라 완전 달라지는데 이 부분을 집중하는 걸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모코 작가님이 중점으로 생각하는 부분과 그걸 표현하시는 방식이 저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재미와 잘 맞아떨어져서 보는 내내 무척 놀랐습니다. 위국일기를 보는 내내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위국일기> 에서 가져온 키워드
공간
개인
창작
아래부터는 <위국일기> 에서 가져온 3가지 키워드로 제가 창작한 단편 소설 [창 머너의 사람] 이어집니다.
창 너머의 사람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의 의식은 언제나 그때 그 장소로 향한다. 집에 비해 덩치가 큰 거실 앞을 바라보면 뻥 뚫린 통유리창 밖으로 관리되지 않은 듯 사람 손을 탄 이름 모를 식물들이 줄지어 하늘로 솟아오른다. 줄기를 따라 올려다본 하늘은 식물의 푸르름과 섞여 마치 하나의 그림과 같이 느껴진다. 훗날 나는 처음으로 접한 지브리 영화를 보며 우리 집 거실을 지브리라 불렀다.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왼쪽에 작은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로는 노트북이 노트북 위에는 피아노 위를 유영하는 피아니스트처럼 글을 써 내려가는 나의 창조주 내가 처음으로 팬이 된 작가 강은모의 두 손이 보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집중된 눈과 멈추지 않는 손끝은 그간 강은모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써 내려갔는 지 알게 해 준다. 타닥타닥타닥 바람이 부는 소리와 가끔씩 쉬다가는 새소리를 제외하면 이곳은 온통 강은모의 손끝에 눌려지는 키보드와 같다. 나는 이 모든 소리를 사랑했다. 글을 쓰는 순간 나의 창조주는 작가가 되었고 키보드에서 손 끝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나의 창조주가 되었다.
"의영아 배고파? 간식 먹을래?"
노트북을 덮으며 나를 바라보는 강은모는 이제 완전히 나의 창조주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새차게 고개를 흔들며 강은모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채 부엌으로 향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순간을 한 치의 오차범위 없이 사랑했다. 내가 글을 쓰기 전까지는.
타닥타닥타닥
나갔던 의식을 복귀시킨다. 글을 쓰다가 조금이라도 의식을 놓치고 손 끝에 이끌려가는 순간 나는 다시 몇십 년 전의 지브리. 그 거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게도 세상에 책을 내놓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 강은모가 있다. 어디서 본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책에서 봤던 말처럼 많이 읽던 나는 자연스레 쓰게 되었다.
투고한 단편 소설이 상을 받아 데뷔하게 되었지만 그 뒤는 잔잔함의 연속이었다. 쓰기만 하면 상을 받고 방송에 출연하고 인터뷰를 하고 길을 가면 사람들이 사인을 부탁하는... 그런 작가와 평생을 산 나로선 이 잔잔함이 되려 낯설게만 느껴졌다. 주변 작가들은 이르게 데뷔했다고 축하를 해왔지만 나는 그저 어색하게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수상작을 엮은 책을 출판사로부터 건네받자마자 나는 집을 나왔다. 식탁에 앉아 거실을 바라본다. 만개한 꽃들과 한눈에 봐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나무와 풀들 그 사이로 햇볕이 마치 영화처럼 비춰지고 그 아래엔 오늘도 글을 쓰는 강은모가 있었다.
"나 집 나가려고"
타닥타닥 탁.
잠시간 계속되던 타자음이 조용해지더니 강은모가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뚜벅뚜벅 걸어와 맞은편에 앉으며 말한다. 당황한 기색없이 그저 고요하게.
"그래. 그리고 아르바이트는 하지마. 그 시간에 글을 써."
그 말에 나는 약간 웃고 말았다. 그 웃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바로 한마디 덧붙인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을 거야. 이제 시작이니까 제대로 써봐."
모든 말이 강은모 다워서 나는 한 번 더 웃고 말았다.
그게 약 2달 전의 이야기. 나는 지금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희원과는 놀랍게도 12년 지기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학생 때도 같은 반이었을 뿐 몇 번 인사한 게 다였는데 신기하게 졸업하고 오히려 많은 말을 나눴다. 또 신기한 건 10년 동안 만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나 신기하게도 약속을 잡아 얼굴을 보면 몇 개월, 몇 년 만에 보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편안해했다. 집을 나오려고 하던 때 마침 희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집 나올 생각 있냐고. 나는 그걸 덥썩 물었고 우리는 적당한 투룸에서 살게 되었다. 작은 방 2개와 화장실 부엌과 거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희원과 나 둘 다 집에 누군가 데려오지 않고 각자 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인도어파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고민하지 않고 계약했다. 각자의 짐이 채워진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방을 구경한 적이 없다. 나도 희원도 굳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고 할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은 저절로 잊혀졌다. 그저 부엌에서 밥을 먹을 때 잠깐씩 생각난다는 정도일까.
그날은 유독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하염없이 침대 밖은 위험한 것마냥 뒹굴고 있는데 강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기 싫다...'
사람의 촉이라는 건 신기하다. 좋은 건 맞는 적이 별로 없는데 안 좋은 쪽으로는 기가 막히게 들어맞으니까. 이런 걸 보면 사람도 동물일 때의 본능이 남아있는 건가 싶다.
"여보세요"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응"
상투적인 대화가 오간다.
글에 대해 묻지 않는 강은모의 배려에 나는 되려 기분이 가라앉고 만다.
"..."
높낮이 없는 차분한 말투가 자연스레 그저께 본 강은모 작가 신간 인터뷰를 떠오르게 했다.
"오늘은 <새>라는 제목의 신간으로 돌아온 강은모 작가와의 만남이 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은모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 강은모입니다."
"작가님의 오랜 팬인데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신간 이야기에 앞서 작가님께 궁금한 점을 여쭙는 질문지를 받았는데요. 거기에 먼저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어떤 질문이 나올지 기대되네요."
"첫번째 질문입니다. 강은모 작가님은 지금까지 냈던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타 작가이신데 작가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있는 밈인 한 탕하고 여길 떠야지 이런 생각하신 적 없나요? 글을 쓰시는 걸 좋아한다는 건 여럿 인터뷰에서 말씀하셔서 알고는 있지만 꾸준히 글을 내시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져요. 어떻게 그렇게 지속적으로 글을 써내려 가실 수 있는 걸까요? 어떤 원동력이 있으신 걸까요?"
"첫 번째 질문부터 재밌는 게 나왔네요. 특히 한 탕 하고 떠야지 이런 밈이 있었다니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마음입니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글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 떼어놓기가 힘들어졌어요. 되려 쓰지 않고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 해야 할 무언갈 하지 않은 기분에 하루를 망친 거 같이 느껴질 때마저 있습니다. 나와 글은 늘 별개로 두어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이 부분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자신과 글을 별개로 두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일과 스스로를 떼어놓지 않으면 괴로운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요. 강은모 작가님은 다작을 하시는 걸로 유명한데 질문자님 말처럼 어떤 원동력이 있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얼마 전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 너처럼 많이 읽는 애는 쓰게 되어 있다였는데 저 포함 많은 작가들이 그런 사람이지 않나 싶습니다."
많이 읽는 사람은 쓰게 된다는 말이 여기서 온 거였구나. 그날도 써지지 않는 노트북과 한 차례 씨름을 하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을 때였다. 티비를 틀자마자 보이는 얼굴은 익숙한 듯 다르고 다르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통해 어디서 본 지 잊어버렸던 문장마저 강은모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와 몸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이상 강은모를 채웠다간 네가 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고. 이 감정의 뿌리가 존경과 열등감이 뒤섞인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 더 이상 어떤 감정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덩어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걸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경우 마주 본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잠시 나가야 하니 나중에 전화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도 무시한 채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놨다.
침대 맡에는 읽다 만 강은모의 신간이, 책장 한 켠엔 본가에서 들고 온 강은모의 소설 몇 권이. 내가 앉은 의자, 책상, 강은모의 지원으로 얻은 나만의 공간. 강은모가. 강은모 작가가 있었기에 나는 속된 말로 팔자 좋게 글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지금은 감정에서 도망친다. 더 알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죄여 오는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희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은데 방에 있기는 너무 괴롭다고. 잠시 네 방에 있어도 되겠냐는 말을. 희원은 잠깐 말이 없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를 집어삼킬 거 같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희원의 방으로 달렸다. 일곱이면 되는 걸음을.
처음으로 들어온 희원을 방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이불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히 앉다가 철퍼덕 누웠다. 의자 책상 책장 책 모든 것이 기울어져 보였다. 온전치 못한 상태인데도 책장 안에 무슨 책이 꽂혀 있나 확인하는 스스로가 어이없다. 아는 작가와 모르는 작가의 책이 뒤섞여 있고 책 제목만으로 무슨 장르인지 추리하는 동안 약간 평온해지기까지 했다. 스캐너처럼 훑던 내 눈은 양 옆의 책들과 판형이 맞지 않는 책에 꽂혔다. 그건 자신이 속한 책을 세상에 내 본 작가라면 가질 수 있는 본능이었다.
내 책이었다. 내 등단작이 속한 책. 나의 첫 책
약간의 과장을 더해 몇 백번을 디지털 파일로 확인했고 출간된 책을 받고 열 번은 넘게 훑었던 책이었지만 희원의 방에 놓여있으니 처음 본 책처럼 낯설다. 희원의 책장에 꽂힌 내 책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싶다가도 또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일어나 책장 앞으로 가 책을 꺼내 펼쳐보고 싶었다가 그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의 아주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봤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내 내면인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경직되었던 몸이 풀어지고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졌다. 피로가 몰려왔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나는 어느샌가 또 다시 강은모와 함께 살던 그 집의 거실. 지브리 앞에 서 있다. 그 앞에는 강은모가 당연하단 듯이 앉아 당연하단 듯 글을 쓴다. 당연하게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고 강은모의 눈은 안경너머로 빛난다. 어린 날의 그때처럼 나는 강은모의 글 쓰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에 오직 자신이 쓰는 글과 자신만 남은 강은모를.
사랑하는 강은모, 사랑하는 그의 소설들, 사랑하는 그의 뒷모습.
티끌 없이 투명했던 어린 날의 사랑과 존경심은 이제 더 이상 내 안에 찾을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그의 옆에 설 수 있기를. 이 꿈에서 깨어나면 잠시 외면했던 나의 세계로 나의 공간으로 다시 갈 것이다. 그리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