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Jun 04. 2024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라디오 세대


난 라디오 세대이다. 석 달 전에 썼던 <논개 정신으로 사는 여자>라는 글에서처럼 지금도 태광 에로이카 전축을 듣는다.

오래되었지만 음질은 아주 좋아서 늘 주파수를 KBS FM 클래식 방송에 맞춰놓고 듣는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좋아하는 피아노 음악이나 아리아가 들려오면 볼륨을 높인다.


라디오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은 출 퇴근길이다.  나 홀로 운전하는 한 시간 30분여 동안 음악이 큰 벗이 되어준다.

 늘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다 보니 어느 만큼 가다 보면 진행자가 바뀌면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곤 한다. 특히 오전 9시에는 하천을 건너기 직전, 다리 위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정체되지 않는 한 일분~삼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에 노선을 지나는 버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운전을 한다.


오전 출근 시간부터 '이재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출발 FM과 함께'를 듣는다.  

 청취자의 사연을 재치 있게 소개하고

퀴즈 정답을 맞추면 열명을 추첨해서 커피 교환 권을 보내준다. 정답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줄정도로 유머 넘치게 문제를 내곤 해서 많이 웃는다.  얼마 전 시청률 조사에서 고득점을 받은 기념으로 삼백 명에게 커피교환권을 보내준다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했다. 차를 급히 세우고 신청을 해봤다. 사천 명가량이 신청했다는 후문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후에 '당첨 아이스커피교환권'을 보내주었다. 오후 내내 벙글벙글 입이 벌어졌다.


 출근하는 길이 천근만근 무겁다. 늘 사직서를 품에 안고 살지만, 마음만 그럴 뿐, 이만한 곳도 없다 싶어  마음을 다잡는다. 좋아하는 음악과 진행자의 따스한 목소리를 들으며 힘을 다.


 9시가 되면 '김미숙 님의 가정음악'으로 넘어간다. 이 시점에서는  시골로 진입하는 하천의 기다란 다리 위에서 음악을 만난다. 여자 DJ 음성으로 김미숙 배우만 한 목소리는 없는 것 같다.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들으면서 하천을 건너고, 들길을 따라 산림 울창한 산사에 도착한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데 큰 활력소가 다.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끝까지 듣고 나서야 시동을 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 


저녁 퇴근시간에는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를 듣는다.

  은 날에 열광했던 올드팝, 영화 OST, 칸쏘네.. 등등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자 열혈 애청자이다.

 행자의 시그널 멘트가 잔잔히 깔리면 볼륨을 높여서 듣는다. 음악이 가장 그리운 시간이다. 태양이 수그러지는 시간, DJ의 음성이 짙은  노을 속으로 스며든다. 출근과 반대 방향으로 뒤돌아 집으로 향한다. 오전보다는 운전이 느긋하다. 석양을 마주 보며 노을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 하루종일 녹초가 된 사람에게 따스한  한잔을 건네주는 것 같다.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십수 년이 지났건만 DJ 전기현 님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세월이 흐르면 목소리도 변할법한데 전혀 변하지 않는다. 언제 들어도 잔잔하다.


그렇게 나의  출퇴근 길은 늘 세명의 유명 DJ와 함께 한다. 3인 3색, DJ들의 노련한 진행과 선곡하는 음악들이 좋아서 주파수를 다시 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근 일 년간 9시의 가정음악을 듣지 못했다.  김미숙 진행자님께서 하차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해마다 삼월이 오면 대대적인 신규 편성을 단행하는데 이때 음악방송들이 개편과 폐지를 단행하면서 진행자들도 자리바꿈을 하는 게 관행이다.


김미숙 진행자님의 마지막 고별방송을 하천 다리 위에서 들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마지막 진행을 힘겹게 이어가던 김미숙 님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시간이 끝나갈수록 눈물이 복받쳤는지, 멘트 없이 허망한 음악만 흘러나왔다. 하천에서부터 주차장 도착할 때까지 같이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 시동을 끄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톤을 이어받은 배우출신의 DJ가 그 자리에 앉았다. 왠지 듣기가 거북했다. 아역 텔런트로 입지를 굳힌 배우지만, 라디오 방송 진행이 난생처음인 티가 역력했다. 신인 DJ에게서 김미숙 님처럼 노련한 진행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갑자기 진행자가 바뀌니 같은 음악이라도 엇박자가 나는 것 같았다.


 목소리톤과 발성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난 낮은 저음의 음성을 좋아하는데, 오랜 세월 김미숙 진행자님의 음성에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김미숙 님도 라디오 첫 진행을 맡을땐 어리벙벙했을 테지만 신인 진행자에게서는 타고난 목소리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이 아쉬웠다.

늘 하천에서부터 송림 울창한 숲길에까지 익숙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갑자기 생경한 목소리로 바뀌니 그 방송을 듣기가 꺼려졌다. 하천 다리 위에서부터 기분이 우울해졌다. 연륜이 가져다주는 목소리의 무게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행자가 바뀌었다고, 음악을 듣지 않다니. 불가에서는 달을 보라 했더니 손가락을 바라보는 격으로 크게 나무랄 수 있는 일이다.


일 년 여를 듣지 않다가 다시 하천 다리 위에서 가정음악을 듣는다. 올봄. 개편을 하면서 신인 진행자가 하차하고, 클래식 방송 경험이 많은 아나운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출근하는 번잡한 도로에서, 송림 우거진 산길에서 음악을 듣는다. 30대 후반에 올라와서  50대 후반을 묵묵히 산사에서 지냈다. 출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있어, 진행자의 따스한 위로가 있어, 산사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진행자가 읽어주는 무수한 사연들을 들으며 나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매일 하천 다리를 건넌다. 일의 특성상 주말이 바쁜 직종이다 보니 주말도 쉬지 못한다.  25년의 세월을 그렇게 건너왔다. 이 다리는 내게 있어 세상과의 인연을 끊음과 동시에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이다. 끊음과 이음 사이에 언제나   음악이 있다. 난 그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레 다리를 건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Dj의 음성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음악을 진행하는 DJ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작가 또한  프로 정신이 필요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위로와 격려, 감동과 공감이 되는 글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음악처럼 잔잔히 스며들 수 있는 그런 글을 말이다.


내심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글쓰기다. 나름 글을 쓰고 있지만 내 글이 중간에 하차한 신인 DJ처럼 구독자들에게 이질감과 생경함을 안겨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듬어지지 않은 어설픈 언어들로 인해 내가 음악을 꺼버린 것처럼 내 글 또한 외면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글들을 돌이켜본다. 하차한 신인 DJ의 마음도 잠시 돌아본다. 신인 DJ에게 일 년간의 라디오 진행은 앞으로 더 큰 배우가 되는데 많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언젠가 다시 라디오 진행자가 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리라.


 나 또한 그러하리라.

아직 어설프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계속 치열하게 글쓰기를 하면서 언젠가는 잔잔히 스며들 수 있는 날이 있으리라.

 음악처럼, DJ처럼 기다려지는 그런 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는 글.

위로와 안과 웃음이 스며드는 그런 글을 말이다.


지금은 치열하게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이전 20화 철새는 날아가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