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학교 때 맨날 학원 수업 땡땡이치고 컵라면 먹으러 다니고, 학원 쌤들 골려주던 기억나니? 네가 그리던 개미 시리즈 보면서 배꼽 잡고 웃던 이야기는 만날 때마다 해도 즐겁다. 내가 말이야, 그 똘기를 다시 가동했다는 거 아니니. 그리고 그 여자의 정체를 확인했지.
평소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그 여자랑 나 둘만 교무실에 남아있었어. 마침 그 시기는 업무 관련 요청을 드리느라 메신저로 이만애 강사님에게 쪽지를 보냈었는데 회신이 없어서 업무 진행을 못하고 있던 때였어. 겸사겸사 둘의 관계를 확인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야.
기도하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최대한 태연한 척 다음과 같이 질문했어.
“심하주 선생님, 혹시 이만애 강사님 아세요?”
그 여자 답변이 뭐였는지 알아맞히면 내가 진짜 널 업고 다닌다. 뭐라 그랬냐면,
“네? 이만‘혜’ 선생님이요?”
이러는 거야. 대박이지 않냐. ‘만’과 ‘혜’ 사이에 0.2초의 간격이 있었고, ‘만’이 ‘솔’ 음이었다면 ‘혜’는 ‘시#’ 정도 됐을 걸. 외모는 출중한데 연기력이 영 딸리더라니까. 내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내가 그런 질문을 언젠가 하리라 예상하고 답변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한 가지 더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다시 잠깐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나서, 뚜벅뚜벅 난 그 여자 쪽으로 걸어갔어.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했지. 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어.
“심하주 선생님, 혹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나요?”
나 또라이 인증 맞지? 무슨 ‘도를 믿으십니까’도 아니고 말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사이비 교주 조명석을 예수라고 믿는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인 척을 하고 일반 교회에 다닌대.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시라는 신앙 고백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 주황 머리 강사님이 이따만한 십자가를 늘 목에 달고 다니는데, 눈빛도 엄청 살벌하고 느낌이 뭔가 너무 이상해서 그 사이비 종교집단 소속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거든. 그 패거리 전부 다. 그래서 확인해 보려는 나의 묘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던 거고. 그렇게 밑도 끝도 맥락도 없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자마자 0.1초 만에 돌아온 답변이 뭔 줄 아니?
“네.”
아야, 귀 따가워. 네 웃음소리에 귀청 떨어질 뻔했다, 얘. 정말 ‘네.’ 그러더라니까. 무슨 군대인 줄. 그런데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아있다는 거. 그 대답을 듣고 너무도 놀란 내가 벙찐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는 거 아니니.
“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고요?”
정말 눈물 나게 웃기지? 그랬더니 그 여자가, ‘네, 저 번동 은혜교회 다녀요.’라고 답하더라고.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교회 다니시는 줄 몰랐다고 하고는 내 자리 쪽으로 몸을 돌렸어. 심지어 내가 언젠가 그런 질문까지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으니 사실상 내 용무는 끝난 거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자가 나한테 묻는 거야.
“그런데 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세요?”
그 여자가 일순간 공격 태세로 전환을 한 거야. 순간적으로 절대 말려들면 안 되겠다는 직감이 들었어.
‘아, 뭐, 그냥요.’ 하고 대강 얼버무리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자가 내 자리로 저벅저벅 걸어오기 시작했어. 납량특집이 따로 없지. 그러더니 재차 질문을 하는 거 아니겠어?
“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시냐고요.”
순간 소름이 쫙 돋으면서, 자칫 잘못하면 바로 머리끄덩이 잡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약간 톤을 누그러뜨리고 말했지.
“아, 교회 다니는 분이신 줄 모르고 그런 질문을 해서... 실례가 되지는 않았나요?”
다행히 아니라고 하더라.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시 강펀치를 시도했어.
“제가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요.”
거기서 내가 ‘무슨 오해요? 아~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오해요?’ 그랬어 봐. 바로 험한 꼴 당하지 않았겠니? 노림수를 읽었지. 얼른 기지를 발휘해서 ‘아, 네.’하고서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어. 그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별수 없었는지 자리로 돌아가더라.
심장이 쫄깃하더라니까. 이로써 내 모든 궁금증은 해결이 되었고, 그 여자가 실패한 공격은 오히려 고해성사가 되어 버렸지 뭐. 그 사이비 집단이 기독교 신자들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벌이다가 안 되면 괴롭히기로 유명하거든. 맞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