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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by 자주적인 결정 중 Feb 19. 2025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일이었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 여자가 가장 먼저 아주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더라. 그러고는 ‘추석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와서 사온 쿠키 좀 드세요.’하면서 선생님들이 출근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고.


마음을 지켜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들어갔는데도 미운 마음이 들어서 힘들더라. 꼭 ‘한사랑 너는 시험 문제 내는 동안 나는 룰루랄라 여행 다녀왔지롱.’하는 말처럼 들리잖아.


그런데 그 환한 미소는 의기양양함이 맞았고, 그 말은 나를 놀리는 말이 정말로 맞았으며, 그러니까 시험 문제 도둑이 바로 그 여자가 맞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아?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올 때, 나는 활짝 웃고 있었어. 학생들과 만나 교실에서 학생들이랑 수업할 때 이렇게 마음에 힘이 다시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천상 교사가 맞나 봐? 끄덕여 줘서 고마워, 친구야. 게다가 그날 수업한 내용이 사회 불안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서의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었거든. 기독교인이 아닌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그런 분석을 했다는 사실에 더 행복하더라.


그.런.데. 말이지, 목을 길게 빼고 교무실에 들어가는 내 표정을 관찰하던 여자의 미소가 삽시간에 굳어버리는 거 있지. 진짜라니까. 그게 다가 아니야. 퇴근하기 전에 교과서를 선정하는 회의가 있었거든? 그 여자가 회의 내내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나 말고 다른 선생님도 관찰하셨다는 것 아니니. 아마 내가 지문을 채취해서 과학수사를 의뢰하거나 어떻게 조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 같아. 며칠 안 있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낌새를 차렸는지 다시 그 웃음을 웃기 시작하긴 했지만.




이상한 사실 하나 더 얘기해 줄까? 그다음부터 난 그 여자가 인사를 해도 안 받고, 나를 향해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무시했거든. 동료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할 수가 없더라고. 아니, 말이나 바로 하자. 욕설 대신 ‘그 여자’라고 불러주는 것도 내 입장에서는 사실 엄청난 존중의 표현이란 말이지. 


예상했던 대로, 그 여자는 내가 도대체 갑자기 왜 인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것일까, 하며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 그 대신 나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밝은 척 인사를 하고, 더 많이 내게 말을 걸려고 시도했지. 마치 나의 짜증을 유발하려는 듯이. 솔직히 말을 걸어올 때마다 혐오스러운 마음이 올라왔어. 싫은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여자는 매번 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네. 흥, 많이 즐기라지.


그렇게 살벌한 동거를 이어가던 중에, 내가 그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마는 일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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