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만‘혜’ 아닌 이만‘애’ 강사님과도 희한한 일이 있었어. 쪽지 회신은커녕 메신저 로그인도 안 하시는 통에 업무를 도대체 진행할 수가 없어서 애가 타는 중이었거든? 분명히 수업 후 강사님들 사무실에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나타나지를 않고 말이야. 심지어 강사님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다른 선생님께 카톡을 통해 용건을 전달 부탁드렸는데도 묵묵부답이었지. 의도적으로 나를 피해서 업무 진행을 못하게 하려는 시도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어.
그러다가 외나무 다리에서 그 분을 알현하게 되었다는 거 아니니. 때는 바야흐로 목요일 오후 5시 45분경, 모두가 퇴근했을 시각이었지. 업무를 슬슬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다가, 택배함에 동아리 지도를 위해 주문해 둔 물품이 도착한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나더라고.
혹시 잃어버리면 안 된다 싶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으면 분명 나는 또 화장실 갈 시간을 쪼개 일을 하기 시작할 테니까 퇴근하기 전에 챙겨 두는 게 좋겠다 싶었어. 1층 택배함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누굴 만났겠니?
네가 이만애 강사님의 그 멈칫하는 모습과 당황하는 표정을 봤어야 해. 학교에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근무하고 있었으면서 메신저 접속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킨 거잖아. 속으로 ‘잘 만났다’ 싶었지. 이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니까.
“강사님, 일주일 내내 제가 드린 쪽지를 안 읽고 계시네요.”
돌아온 답변이 뭐였는지 아니?
“아, 제 자리에 와이파이가 안 돼서 메신저 접속을 못하고 있어요.”
명백한 거짓말이었어. 학교 메신저는 교사용 인터넷망을 통해서만 접속가능하고 무선 인터넷망으로는 접속 자체가 안 되거든. 거짓말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기력도 없고 해서 다른 근거를 들었지.
“게다가 다른 분을 통해서 카톡을 드리기도 했는데요.”
카톡을 못 받았다고 한 차례 더 믿기 어려운 대답을 하더니 무슨 내용의 메시지였냐며 화제를 돌리시더라. 하여간 어찌저찌 용건은 해결했는데 동료로서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에 대한 찜찜함은 해결할 도리가 없었고.
진솔이 선생님께 전화해서 시험범위 좀 대신 입력해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하던 국어 교사도 질세라 협공을 펼쳤지. 그 선생님의 업무는 학생 지도였어. 학생 사안을 처리하고 교내 봉사 등 징계 절차를 이행하는.
때마침 우리 부서 업무 처리를 하면서 교내 봉사를 하게 된 학생의 도움을 받아 물건을 창고로 날라야 할 일이 생긴 거야. 진솔이 선생님과 내가 둘이 하기엔 너무 버거웠거든. 게다가 나는 추석 때마저 제대로 쉬지 못해서 몸이 많이 축난 상태였고.
학생도 우리도 급식을 먹어야 하니까 4교시 종료 시각인 12:10에 종이 울리자마자 학생이 교무실로 오도록 해주시면 좋겠다고 진솔이 선생님께서 국어 선생님께 진작 쪽지를 드리셨고. 그런데 약속한 시각에서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학생이 안 오는 거지. 문제의 국어 선생님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나는 일단 진솔이 선생님께 식사를 하시자고 제안해 드렸어.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이 올까 봐 진솔이 선생님께서 걱정을 하시기에, 아마 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가시자고 권유를 했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어. 역시나 학생은 식사하는 중이더라고.
“도현아, 국어 선생님께서 몇 시까지 교무실에 가라고 하셨니?”
“12시 40분이요.”
“응, 알겠어. 그때 교무실에서 보자.”
내 그럴 줄 알았지. 진솔이 선생님께 ‘12시 10분 맞죠?’ 하며 며칠 전부터 진솔이 선생님께 전화와 쪽지로 몇 차례씩 거듭 확인을 하더라니. 작전을 짜는 중이었던 거야. 국어 교사와 친구들이 며칠 동안 집단 지성을 발휘해서 완성된 예상 시나리오는 이거야. 한 번 들어 봐.
나와 진솔이 선생님이 12시 10분부터 학생을 마냥 기다리다가 그냥 점심 먹으러 가기로 결심할 즈음에 학생이 도착해. 학생이 왔으니 짐을 나르느라고 우리 둘 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진솔이 선생님이 끼니를 거르게 되고, (바라고 원하건대) 약속 시간을 안 지킨 학생에게 우리가 짜증을 내다가 ‘어떤’ 문제에 휘말리기를 고대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거지. 적어도 학생과 엇갈려서 일을 당일에 처리하지 못해서 짜증이 나게 되거나.
그런데 내가 12시 15분쯤 그 수를 읽고 밥을 먹었다는 거 아니니. 만세! 그러고는 12시 40분 ‘정시’에 도착한 학생에게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짐짓 물어봤어.
“도현아, 국어 선생님께서 12시 10분까지라고 말씀 안 하시든?”
“네. 계속 여쭤보러 갔는데 나중에 오라고 하면서 시간을 안 말씀해 주시더니 오늘 아침에 12시 40분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친구, 날 ‘한탐정’이라고 불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