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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시험 문제

by 자주적인 결정 중 Feb 21. 2025



그 여자와 친구들이 미우면서 때때로 안타깝기도 했어.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타인을 괴롭히는 데 허비하고 있다니 말이야. 그런데, 너무도 성실하게 나를 괴롭히는데 넌덜머리가 나는 통에 안쓰러운 생각이 들 겨를이 별로 없긴 했지.


어느 날은 학교 예산으로 물품을 구매한 영수증을 정리해 둔 증빙서류 뭉치가 싹 사라지지를 않나, 사라졌던 회의록이 내가 보관해 둔 적이 한 번도 없는 위치에 놓여있질 않나. 학교 공지 사항 검색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를 굳이 나에게 요청하질 않나, 정말 가지가지하더라고.


하루는 내 짝꿍 진솔이 선생님을 몰래 불러내서 이렇게 묻더래.


“한사랑 선생님 요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세요? 요전에 제 업무 요청을 거절하시던데.”


시험지를 훔쳐 간 사람의 업무에 도저히 협조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다른 업무 핑계 대면서 ‘죄송합니다.’ 했거든. 실제로 내가 그 업무로 정말 바쁜 시기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내 짝꿍 선생님과 나 사이를 이렇게 이간질을 하더라는 거지. 내가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알아서 뭐 하려고 했겠니? 정말 밥 먹고 날 골려줄 궁리만 하는 사람처럼 굴더라니까.


난 업무가 바빠서 안 그래도 화장실 참아가며 일하는 중인데, 근무 환경마저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니까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어. 그런데 겉으로는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비칠 수가 없잖니. 그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고 싶지 않아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일부러 더 쾌활하게 생활하고 있는 듯 가면을 쓰고 버티는데, 참말로 힘들더라.


언젠가부터는, 나 자신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시험 문제 출제 기간이 아닌 때에는 집에 갈 때도 잠그지 않던 캐비닛을 쉬는 시간마다 걸어 잠그고, 학교 행사 준비하느라 사둔 물품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 하고 물품을 보관한 장소에 한 시간에 한 번씩 가서 확인하고, 혹시 내 물컵이나 칫솔에 독극물을 묻혀놓지는 않았나 해서 아침마다 물컵을 솔로 박박 문질러 씻는 등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지.




시간이 흘러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출제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는, 정말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졌어.


추석 직전에 사라진 시험지와 답안 파일이 내 책상 옆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게 아니겠니? 내가 교육경력이 몇 년인데, 그런 보안 문서를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몇 달 동안 못 찾고 있었겠느냐고. 그 여자는, 나로 하여금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내가 시험 문제 출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던 거야. 그때는 정말이지 혈압이 오르더라.


인간은 어디까지 악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슬펐어, 아주 많이. 그즈음에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도 몇 차례 받았어.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EFT 치료를 해주시겠다면서, 작은 나무막대기로 내 몸 여기저기를 콩콩 두드릴테니 아픈 곳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하셨어. 손꿈치 쪽을 두드릴 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더니, 상담 선생님께서 대뜸 말씀하셨어.


"외로우시군요."


눈물이 쑥 나더라고. 언젠가부터인지 내게 이를 악무는 버릇도 생겼더라.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몰라. 


그러고 보면 난 잔혹 행위의 생존자 맞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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