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지점은, 내가 다른 동료들 눈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고 불안함이 몰려오던 순간들이었어. 그만큼 내가 사람들 눈을 많이 의식하고 살아간다는 거겠지. 내가 눈치가 빠른 것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단련된 결과 아니겠니. 늘 오빠와 비교당하고 살면서 나도 어떻게든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다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은 신앙인으로서의 다짐이 똘똘 뭉쳐진 산물이랄까.
물론, 이러한 ‘산물’이 내게는 ‘선물’이기도 해. 결과적으로 나는 이런 성향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수업 열심히 연구해서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축에 속하는 것 같고, 나름 다른 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등 외부 활동도 하고 있거든. 게다가 외부 활동하느라 학교 일 게을리한다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서 학교 업무도 충실히 하려다 보니 동료 선생님들의 사랑도 받고 있고 말이야. 이렇게 사회생활 잘하고 있는 딸내미 이야기 들려드릴 때마다 아빠는 눈시울을 붉히셔. 내가 아빨 닮아 눈물이 많잖니.
그렇게 ‘능력 있는 데다가 성격도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같은 교무실 선생님에게 대놓고 쌀쌀맞게 굴고, 교무실에서 거의 웃지를 않고, ‘아, 또 없어졌네.’하고 좌절감이 가득한 혼잣말을 내뱉는다거나, 갑자기 충혈된 눈을 하고 업무 관련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보인 적이 없었거든. 갑자기 변한 내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의아해하거나 좋지 않게 생각한 동료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정규직 근로자가 확실한 물증도 없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의심하면서 경우 없이 구는, 딱 '갑질 사건'이잖아.
하지만 따로 해명을 하고 싶진 않았어. 뭐랄까, 이러쿵저러쿵 타인의 허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건, 내가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이야.
물론, 겪고 있는 일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가족과 친구, 신뢰할 만한 동료 선생님 몇몇 분께 털어놓은 적은 있지. 그로 인해 학교에 소문이 약간 퍼졌을 수는 있겠다. 그럼 결국 그게 그거인 상황인 건가? 휴, 그럴지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 교무실 선생님 여덟 명 중에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분이 세 분쯤 된다는 거. 그리고 앞으로도 그분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거. 게다가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거.
그 모든 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