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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2)

『더 헌트』와 『피고인』으로 보는 집단의 폭력성과 사법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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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세 번째 말하였다. “이유가 무엇이오?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했으므로 매질이나 해서 놓아 주겠소.” 그러나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대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마침내 그들의 소리가 이기고 말았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할 것을 선언하였다. (누가의 복음서‬ ‭23:13‭-‬16‬ ‭KLB‬ 참조)


무고한 자를 가해자로: '선량한 자'들도 범할 수 있는 잘못과 피고인의 반대심문권


1. 영화 『더 헌트』에 드러난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


   『더 헌트』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무척 평화롭고 정이 넘치는 공동체였다. 그곳의 주민들은 하나 같이 선량하고 친절한 사람들로,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동화 속 장소와도 같았던 이 마을에도 한순간에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한 어린아이(클라라)가 자신의 유치원 선생님(루카스)에게 성희롱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식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금씩 두려움을 심어가더니, 다른 유치원생 아이들마저 성추행 후유증을 보이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집단적 공포심을 낳기에 이른다. 마치 페스트가 에페소스 공동체의 평화와 질서를 무너뜨렸듯이(이전글 참조), 자신들의 이웃 중에 소아성애자가 버젓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소문은 마을 공동체의 안정을 근간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실상 루카스는 아이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아이들의 피해사실 고백이나 이상 행동은 모두 미숙한 판단력과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중에서 아이들이 실제로는 없었던 성추행 후유증을 보이는 모이나, 아이들이 루카스네 집의 '지하실'에 대해 진술하지만 실제로 지하실은 없었던 사실 등은 모두 실제 아동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그러나 이미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집단적인 두려움과 불안에 빠져버린 이상, 그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자는 반드시 축출되어야만 한다. 즉 마을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기 위한 희생제의(sacrificial ritual) 속에서 루카스는 (진실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성범죄자여야만 하고, 그 죄 값으로 추방되어야만 한다.


   물론 '선량한' 마을 주민들은 소아성애자로 의심되는 주인공에게 처음부터 돌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집단 린치를 개시하기 전에, 자신들이 가하려는 폭력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먼저 확인받고자 한다. 다만 그러한 정당성은 이른바 ‘권위 있는 자’의 말 한마디에 의해 너무나 손쉽게 확보되어 버린다. 영적 지도자였던 아폴로니우스가 거지를 ‘모든 신들의 적’으로 지목한 것처럼, 영화 속 아동 심리 전문가가 루카스를 ‘아동 성폭행범’으로 지목하자마자 투석행위는 정당한 것으로 윤색된다. 루카스를 향한 모든 혐오와 경멸, 심지어 물리적 폭력마저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버리는 강력한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신화가 집필되기 시작한 이상, ‘소아성애자’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서사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만 해석된다. 제자를 학교까지 바래다주던 유치원 선생님의 친절은 성범죄의 예비행위로 재해석되며, 억울한 누명을 쓴 자의 분노 표출은 단지 성범죄자의 잠재된 폭력성의 발현으로 이해된다 (심지어 루카스를 사랑하던 애인마저 신화적 해석 작용에 종속된 채 그의 행위의 의도를 의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서사의 기본 줄기에 부합하지 않는 반대증거들(ex. 자신의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자 하는 클라라의 시도들, 루카스네 집에 ‘아이 학대용 지하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는 곧바로 배제되거나 간과된다. 신화가 신화로서 제 기능을 다 하려면 내적 모순이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단한 해석 작용을 통해 마침내 신화의 일관성이 빈틈없이 확보되자, 집단의 폭력성은 아무런 족쇄 없이 분출되고 희생 제의는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루카스는 마을에서 경멸의 대상이 되어 최소한의 인격적 존중조차 받지 못하며, 생필품 가게를 비롯한 공적인 장소에의 출입을 거절당한다. 창문으로 돌이 날아드는 등 주거의 평온이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물리적 폭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루카스의 측근들(루카스의 애인과 아들)이 루카스의 편에 서지 못하도록 종용받는다는 것인데, 그 측근들이 집단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그들 또한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는 희생양을 철저히 고립시켜 그가 감히 반격을 가하거나 복수를 꾀할 수 없도록 하는 것, 그로써 ‘희생제의’가 안정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준비절차로 이해될 수 있다.


2. ‘희생양 만들기’를 방지하기 위한 형사절차의 공정성 확보: 2018헌바524 결정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던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2018헌바524)을 내린 바 있다. 당해 법률 조항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서 반복하여 피해경험을 진술하거나 반대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심리적·정서적 고통 등과 같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만, “성폭력범죄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반대신문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 수사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증거보전절차를 적극적으로 실시함으로써 “피고인에게 반대신문 기회를 부여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의 반복진술로 인한 2차 피해를 적절히 방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 법률은 피해자의 보호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었다.


"미성년 피해자에 대하여 증거보전절차를 적극적으로 청구·실시할 경우, 미성년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과 피의자(피고인) 측의 반대신문 등에 관하여 사건 초기에 ‘증언’함으로써 법원의 판단에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내지 피고인 역시 자신의 반대신문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성년 피해자는 공판단계에서 증거능력이나 피고인의 탄핵에 대한 답변 등을 위해 갑작스레 증인으로 소환되어 반복진술해야 하는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수사단계에서도 피의자(피고인)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칫 반복적인 조사를 받게 되는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2021. 12. 23. 선고 2018헌바524 전원재판부 결정)


   『더 헌트』에서 루카스가 집단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재판절차의 공정성에 관한 위 헌법재판소 결정이 가지는 의의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에서 루카스는 운 좋게도 (피해자들의 진술과는 달리) 집 안에 지하실이 발견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만약 그러한 운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카스에게 그러한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으며, 이에 억울함을 느낀 루카스의 아들이 클라라를 직접 찾아가 위협을 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판시처럼 미성년 피해자에게 안전한 진술의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정교한 형사절차가 마련되었더라면, 영화 속 전개는 매우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폭력적 신화를 해체하여 희생양 메커니즘의 발현을 저지하는 데 있어 형사절차의 공정성 확보가 갖는 중요성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음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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