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질주 사이, 인간의 온도를 데우다

김영하 『작별인사』를 덮고, 나에게 건네는 인사

by 박주영
이 우주에서 ‘의식’을 얻은 존재는 극히 드물다.
감각하고 지각하며, 과거·현재·미래를 한 몸 안에서 통합해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우리는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희망을 품는다.


지난밤 폭설이 내렸다.

눈은 늘 그렇듯 세상의 소란을 흡수하고, 아침엔 고요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눈 온 다음 날의 새벽을 좋아한다. 다섯 시, 서재 책상 앞에 앉았다. 일주일 내내 곁에 두고 읽은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처음부터 다시 넘겨 본다.

작별인사.jpg 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 (출처:복복 서가)

작가는 말한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나 역시 가끔 의심했다.

공부하고, 실험하고, 성과를 내고, 다음 목표를 또 세우는 나를 보며—나는 혹시 잘 조율된 연구 수행 장치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러나 새벽 창가에 쌓인 눈을 보며 마음이 미세하게 미는 소리를 들을 때, 봄의 짧음을 미리 서운해할 때, 나는 분명히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성취가 주는 짜릿함은 크지만, 삶을 데우는 건 언제나 감각 쪽이다. 눈 밟는 소리, 따뜻한 찻잔의 열, 책장 넘길 때 손끝에 전해지는 마찰 같은 것들.


<작별인사> 속 주인공 철이(철학의 철)는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다. “죽을 수 있음”까지 설정된 존재. 그는 두 개의 육신을 지나, 결국 소멸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깨닫는 기쁨들은 놀랍도록 인간적이다. 요란한 새소리에 눈을 뜨는 일, 피곤한 몸으로 잠드는 일, 아침이면 상쾌하게 다시 시작되는 일상에 대한 감사. 불멸의 옵션이 있어도, 삶을 뜨겁게 만드는 건 “유한성”임을 소설은 고요하게 증명한다.


내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나는 평엔 들판으로 나가 짐승을 사냥하듯 일한다. 길을 탐색하듯 연구하고, 활을 겨누듯 설계하며, 빗나간 화살은 끝까지 따라가 원인을 바로잡는다. 주말엔 집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며 충전한다. 책장을 넘기고, 문장을 다듬고, 마음의 습기를 햇살에 말린다. 외견상 모순처럼 보이는 두 속도가 서로를 지탱한다. 고요가 있으니 질주가 가능하고, 질주가 있으니 고요가 온다. 연구자는 결국 “균형을 설계하는 직업”인지도 모른다.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선이 말은 오래 남는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는 확률이 얼마나 드문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 우주에서 스스로를 느끼고, 보고, 지난날과 오늘과 내일을 한 몸에 품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인간으로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큰 축복이다. 우리는 상처를 겪고도 희망을 품는다. 유한한 시간—채 백 년도 미치지 못하는 생을 건너는 동안 잠시 깨어 있다는 이 기적 앞에서,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다하려는 책임이 생긴다.

그 책임은 곧 선명한 고마움이 된다. 숨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과 동료, 친구라는 인연이 얼마나 귀한지, 함께 있는 지금이 얼마나 드문 순간인지 비로소 보인다. 우리의 짧은 깨어 있음은 서로를 통과해 오래 남는다.

우주의 시계로 보면 모든 만남은 언젠가 흩어짐을 향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러나 흩어짐이 끝이 아니라면—우리는 오늘 이 생에서 더 다정할 이유를 얻는다. 지금 여기의 따뜻함을 조금 더 건네며, 언젠가 다시 만날 시간을 믿으면서.


모든 만남은 흩어짐을 향하지만, 그래서 지금 더 다정해진다.jpg 모든 만남은 흩어짐을 향하지만, 그래서 지금 더 다정해진다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했다.
나는 종종 ‘다음 성과’에 홀려 ‘지금 나’를 잃는다. 그러나 성취는 결과의 이름이고, 삶은 과정에 머무는 온도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성취와 성공만이 아니라 매일의 감각을 다시 켜는 일. 눈 온 아침의 고요에 귀를 대고, 한 문장 앞에서 숨을 가다듬, 한 사람에게 마음을 조금 더 기울이는 일. 그렇게 하루의 온도를 지키는 것—그게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의 모양이었다.


해외에서 혼자 연구하며 느끼는 고독은 분명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고독 속에서 다져진 실력이 나를 다시 사람들 사이로 끌어올린다. 좋은 질문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또렷한 답은 신뢰를 세운다. 한 권의 책이 겨울 새벽의 손끝을 데우듯, 한 편의 논문은 어둑한 누군가의 연구실을 밝힌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작별인사’와 ‘시작 인사’ 사이에서, 서로의 시간을 데워주는 존재들이다.


Take-home message

성과는 속도의 문제지만, 삶은 온도의 문제다.

유한하기에, 지금의 감각과 다정함이 곧 의미다.

고독을 버티는 방법은 실력과 감수성을 동시에 가꾸는 일이다.


독자님께 작은 질문

최근에 당신을 “기계가 아닌 나”로 돌려놓은 감각은 무엇이었나요?

새해의 목표 옆에, “삶의 온도를 지키는 루틴”을 한 줄 추가한다면 무엇을 적고 싶나요?


눈이 온 뒤의 고요처럼, 오늘 우리의 마음도 잠시 맑아지길.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명료하게 빛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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