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추억을 안고, 꿈의 펜촉이 이끄는 여정으로
파랑새의 작별, 그리고 귀환의 새벽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끝나갈 무렵, 와이프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원래 계획은 내가 아이들을 1년 더 맡아 영어 공부를 시키는 거였다. 아이들이 그곳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길 바랐다.
하지만 코로나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1달간의 자택 격리를 겪으며, 뉴질랜드의 의료 시스템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특별 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라 항공권 예약이 고역이었다. 전화로 200번 넘게 통화하며 겨우 자리를 잡았다.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와 함께 도착한 순간, 아이들이 감염될까 벌벌 떨던 그 불안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타향에서 가족이 흩어질 뻔한 공포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한국에 도착해 집 문을 열고 냉장고를 보니, 테라 캔맥주가 꽉 차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 동안,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그걸 철저히 지켰고, 와이프가 그 보상으로 준비해 준 선물이었다. 그 순간의 따뜻함이, 긴 여정의 피로를 녹여주었다.
안정된 꿈을 향한 첫걸음
다음 날부터 공무원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41살이라는 늦은 나이,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불안정한 생활이 내 마음을 바꿔놓았다. 영주권 진행이 어려울 때, 여권 재발급으로 영사관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곳 직원들의 안정된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이제 내 나라로 돌아왔으니,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든든한 위안을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다시 예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가족을 지키는 삶을 꿈꿨다. 다행히 와이프가 복직해 잘 적응하고 있었고, 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아이들을 돌보며 1년 동안 공무원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회사 다니며 자격증 공부도 하고, 뉴질랜드에서 준석사 과정을 1년 이수한 경험이 있었으니, 공부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가족과 공부 사이의 고독한 균형
문제는 시간이었다. 와이프가 아이들 케어를 철저히 해주길 원했기 때문에, 식사 챙기고 학원 데려다주고 숙제 도와주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공부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에 8시간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특히 행정법처럼 생소한 과목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험 날이 다가왔고, 첫해 지방직 시험을 봤다. 결과는 불합격. 하지만 신기하게도 필기가 두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그 아쉬움이 오히려 동기를 불어넣었다
1년 약속이 끝나 일자리를 찾으려던 차에, 와이프가 불렀다. “아깝지 않아? “라고. 괜찮다고 했더니, “1년 더 도와줄게, 할 거야? “라고 물었다. 그렇게 1년 더 도전하기로 했다.
재도전, 그리고 성장의 리듬
두 번째 해는 달라졌다. 와이프가 많이 배려해 주었고,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아이들 케어가 수월해졌다. 첫해엔 둘째가 1학년이라 챙길 게 많았고, 애들과 친해지려 놀이터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그 시간을 줄여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공부법도 물이 올랐다. 강의를 듣고 내용을 스스로 정리한 후, 빈칸이나 O/X 문제를 만들어 복습했다. 암기가 많은 국어나 영어는 암기 비법이 담긴 표를 만들어 매일 아침 워밍업으로 공부했다. 카페 등에 정리 자료를 올려 사람들의 검증을 받으며 자신감을 쌓았다.
목표는 작게 나누어 실천 가능하게 세웠다. 매일매일 성취감을 느끼며 나아갔다. 시험 당일에 대한 리허설도 철저히 했다. 들어가서 공부할 과목 순서, 물 마시는 시간까지 계산해 요약 노트를 다 봤다.
마지막 1분 전, 나는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동안 체계적으로 준비했으니 결과는 좋을 거야.” 시험을 마치고 나온 느낌이 좋았다. 역시나 합격점을 받았고, 나는 마침내 공무원 행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가족의 지지, 그리고 새로운 출발
이 모든 과정에서 가족의 지지가 컸다. 와이프의 배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부의 원동력이었다. 늦은 나이의 도전은 고독했지만, 뉴질랜드에서의 불확실함을 딛고 안정된 길을 찾은 기쁨은 컸다.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공무원 합격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균형을 맞춰 나아간 여정의 열매였다. 푸른 뉴질랜드 추억을 안고, 이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매일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