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민 생활의 양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 파란색
어릴 적부터 파란색을 유난히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 영화 ‘그랑블루’의 포스터를 방 벽에 붙여놓고 매일 바라봤다.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장면들, 그 무한한 파란색이 주는 평온함과 자유로움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맑은 하늘색부터 깊은 바다색까지, 파란색은 내게 꿈과 이상향을 의미했다.
그래서였을까. 뉴질랜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과 바다가 내게는 희망 그 자체로 보였다.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마음으로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했다. 여유로운 삶, 깨끗한 자연환경,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 모든 게 그랑블루 포스터처럼 아름다울 거라고 믿었다.
뉴질랜드의 또 다른 파란색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곳에도 다른 종류의 블루가 있었다. 우울하고 막막한, 그런 블루 말이다.
와이프는 생각보다 적응을 어려워했다. 아무리 현지에 맛있는 원두를 파는 카페가 있어도 스타벅스를 찾았고, 수제 버거집보다는 익숙한 프랜차이즈를 선호했다. 한국에서의 편리한 생활을 완전히 내려놓기는 힘든 일이었다.
나는 뉴질랜드 생활의 백미가 이웃들과 어울려 바비큐를 해 먹고, 맥주 한 잔 하며 거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그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와이프는 그런 사교적인 시간보다는 가족끼리만 보내는 조용한 시간을 더 좋아했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우리가 느끼는 색깔은 달랐던 셈이다.
직업, 그리고 현실의 벽
가장 큰 블루는 직업적인 부분에서 왔다. 한국에서 사무직이나 IT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마트나 소매점에서의 판매, 물품 정리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힘든 일이라고 여겨지는 화물차 운전이나 건설 관련 일이 그나마 자리가 많고 일하기 좋았다.
아니면 한국에서의 경력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운 일을 배워야 했다. 영주권을 받은 것 자체보다 이런 직업적 정착이 안 되는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그래도 있었던 파란 하늘들
물론 좋은 파란색들도 많았다.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해변이 있어 수영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거리 자체가 아름다워 하루에 2만보씩 정해놓고 이 길 저길 걸어 다니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참여할 수 있는 캠프와 활동이 많았고, 핸드폰보다는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수영하며 친구들과 장난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고민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졸업 후 대학을 가지 않고 마트나 전자제품, 공구 유통업체에 취업해서 판매직을 하거나, 카페 바리스타나 음식점 셰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 창조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지만, 그 창조력이 실제 직업으로 이어지는 길은 많지 않아 보였다. 제조업은 전무하고 의료, IT 분야도 많이 뒤처져 있다 보니 똑똑한 친구들은 다 호주로 떠나버리고, 남은 친구들끼리는 전문성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뉴질랜드는 주급 베이스라 집세 내고 식료품 사고 나면 정말 남는 돈이 많지 않다. 다들 그걸 모아서 여행을 가는데, 몸이 갑자기 아프거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정말 어려워진다. 물론 자기 분야에서 길을 잘 찾아 나아가는 청년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가졌던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아서 불안했다.
두 가지 파란색의 공존
결국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뉴질랜드가 나쁜 곳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민이라는 건 만능 해답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파랑새가 사는 이상향이 될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블루 한 감정만 안겨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과 가족의 성향, 가치관,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들을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파란색을 좋아한다. 뉴질랜드에서의 경험도 소중한 추억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한 파란색은 없다는 것을. 어떤 곳에든 밝은 파랑과 어두운 블루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지도, 말리지도 않는 이유다. 각자의 삶의 맥락 속에서, 각자의 파란색을 찾아야 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