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어낸 두려움과 마주한 따뜻한 현실
내 안의 편견이 만든 두려움
영주권을 위해 뉴질랜드 한인마트에서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걱정은 한인 손님들이었다. 혹시 까다롭게 굴지는 않을까, 작은 실수에도 크게 화내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교포들은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언어 소통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정작 더 두려웠던 건 동포들의 시선이었다.
무너진 편견, 발견한 따뜻함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내 걱정은 기우였다. 한인 손님들은 생각보다 훨씬 친절했고, 이해심이 많았다. 서툰 서비스에도 웃으며 기다려주고, “수고 많으세요”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다.
명절 시즌처럼 바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줄을 서면서도 짜증내지 않고, 오히려 “많이 바쁘시죠?“라며 격려의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내가 상상했던 냉정하고 까다로운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점장님과 동료들, 그리고 중재자의 역할
점장님과 동료들과의 관계도 걱정과는 달랐다. 모든 분들이 나에게 친절했고,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중간 위치에서 중재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다행히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가끔 직원들 간에 작은 의견 차이가 생기면,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서로 편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주었다. 그런 소통이 쌓이면서 마트 내 분위기도 점점 좋아졌다.
명절 세일, 팀워크로 이겨낸 전쟁
한인마트의 최대 고비는 명절 세일이었다. 추석, 설날이 다가오면 온 마트가 전쟁터가 되었다. 김치, 떡, 전통 양념류 등 필수품들을 옮기고 진열하느라 모든 직원이 녹초가 되곤 했다.
그때 나는 동료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어차피 많이 팔릴 물건들은 정해져 있으니, 미리 예상해서 좋은 자리에 진열해두면 어떨까요?”
모두가 동의했고, 실제로 해보니 효과가 놀라웠다. 바쁜 와중에 물건을 찾아 헤매거나 다시 옮겨 진열하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손님들도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만족해했다. 작은 소통과 협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1년 후 깨달은 진실
1년간의 마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보니, 내가 가졌던 걱정과 선입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한인교포들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은 누군가 만들어낸 편견일 뿐이었다.
실제로 만난 모든 분들은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들이었다.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아는 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컸고,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 대부분은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허상이었다. 계산대에서 매일 마주하는 눈맞춤과 짧은 대화들이 그 편견을 하나씩 허물어뜨렸다.
지금도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선입견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편견보다는 경험으로 사람을 판단하자고. 뉴질랜드 한인마트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가르쳐준 소중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