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에서 배운 꾸준함과 마음 챙김
영주권을 준비하며 한인마트에서 일하던 어느 오후, 떡집 사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평범한 순간이었는데, 그의 제안은 내 인생의 밤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영주권 도와줄 테니, 밤에 떡집에서 쌀 방아찧고 반죽 좀 해줘."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긴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일이었다. 운전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을 못해서 와이프가 데리러 오거나, 아니면 새벽 5시 반 첫 차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고독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 한편이 저려온다.
쌀을 나르고 씻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쌀알 하나하나가 투명해질 때까지 정성스럽게 씻어내고, 정확한 무게를 재어 적당량을 퍼 담았다. 그리고 떡의 종류에 따라 소금의 양을 달리 넣고 갈아서 고루 섞어주는 과정이 이어졌다.
떡마다 요구하는 쌀의 품종과 처리 방법이 달랐다. 백설기는 이렇게, 인절미는 저렇게.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날 만들어질 모든 떡이 망가진다. 더 큰 문제는 내 작업이 늦어지면 아침에 출근하는 동료들의 일정까지 모두 꼬인다는 것이었다. 그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방아가 끝나면 찾아오는 청소 시간. 망에 남은 쌀알들을 하나하나 털어내고, 바닥에 흩어진 가루들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석구석 닦아내는 그 시간들. 온몸이 쌀가루와 물기,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처음 몇 주는 정말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에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미안함과 초조함이 뒤섞인 채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스스로 레시피와 시간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작업 순서마다 마감 시간을 정하고, 그날 만들 떡의 분량에 따른 쌀의 양과 소금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리고 모든 동작을 표준화했다. 가루로 만든 쌀과 소금을 섞는 방법과 횟수까지 세세하게 맞춰놓았다.
이 체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몸이 힘들어 섞는 횟수를 줄였더니, 바로 손님이 떡이 짜다고 불평을 했다. 사장님께 혼이 났지만, 동시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내 작업의 정확성이 직접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뿌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은 점점 익숙해졌지만, 인간관계는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고, 사장님도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으샤으샤하며 힘을 합쳐 일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직원이 그만두는 과정에서 사장님의 다른 면을 보게 됐다. 실망이 컸다. 그래도 와이프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기 직전까지, 힘들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계속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업이 끝난 후의 그 시간들이다. 새벽 4시,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은 젖고 간지럽고 아팠다. 쌀가루가 옷 속까지 파고들어 피부를 자극했고, 손은 차가운 물과 거친 작업으로 갈라졌다. 그런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 그 고단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떡집은 교외의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냇물들이 흘렀고, 새벽 5시 반 첫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 냇가를 바라보곤 했다. 그 시간에는 평화롭게 떠다니는 오리들이 보였다. 조금은 슬프지만 묘하게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때 가장 유행하던 노래가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였다. 피곤에 절어 있으면서도 그 멜로디가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냇가의 오리들과 함께 듣던 그 노래, 아직도 들으면 그때의 새벽 공기와 고요함이 그리워진다.
야간 떡집에서의 경험은 내게 특별한 힘을 주었다. 그 이후 어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와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멘탈이 무너질 때마다 '야간 떡집 일보다는 편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버텨냈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나는 꾸준함을 배웠다. 정확한 분량, 일정한 리듬,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가짐. 쌀을 씻고 갈고 섞는 단순한 동작들이 내 마음도 함께 반죽해주었다. 더 단단하게, 더 부드럽게.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이제는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새벽 냇가의 오리들, 뜨거운 쌀가루 냄새, 동료들과의 소소한 대화들, 그리고 완벽하게 섞인 반죽의 부드러운 감촉까지.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 야간 떡집의 작업 리듬을 떠올린다. 차근차근, 꾸준히, 정성스럽게. 그때 배운 마음챙김이 오늘도 내 일상을 지탱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