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여행
회사에서 지쳐있던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던진 말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마일리지랑 호텔 포인트로 발리 거의 공짜로 다녀왔어.”
그렇게 시작된 호텔 VVIP 도전기. H호텔 경주에서의 첫 맛보기부터 남산과 홍제동에서의 룸업그레이드, 오키나와 라운지에서의 여유로운 조식, 그리고 홍콩에서 받은 100만원짜리 스위트룸까지. 마치 별빛 아래 왕족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퇴직 여행 때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포인트로 얻은 무료 숙박에서 수영장을 전세 낸 듯 사용하며, 라운지에서 조식을 즐기던 그 순간들. 얼마나 달콤한 별빛이었는지.
하지만 인생은 참 묘하다.
뉴질랜드 이민을 위해 학교에 다니며 워킹비자를 받았을 때, 나는 그 호텔 경험을 무기로 프랑스 A사의 럭셔리 호텔에 지원했다. 면접관들은 내가 호텔 VVIP였다는 말과 전 직장 연봉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키친 핸드’가 되었다.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하는.
새벽 6시 출근, 오후 3시 퇴근. 접시가 물밀듯 들어와 1초도 쉴 수 없는 나날들. 뜨거운 프라이팬을 날라야 하는 위험한 저녁 시간들. 셰프들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순간들. 끝없는 설거지 물결 속에서 나는 잠겨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설거지 물결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항상 잘해주는 인도 셰프, 처음엔 텃세를 부렸지만 나중엔 시금치 프리타타를 만들어주던 말레이시아 셰프. 그리고 가끔 해주시는 메인 셰프님의 타이 커리는 정말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가장 비참할 거라 생각했던 이 설거지 물결이 지금은 가장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마시던 피쉬앤칩스와 수제 맥주 한 잔의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라운지에서 우아하게 조식을 즐기던 별빛 같은 순간들과 뜨거운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던 설거지 물결의 시간들. 언뜻 보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느껴지지만, 돌이켜보니 둘 다 소중한 내 인생의 한 조각이었다.
VVIP로서 받던 별빛 같은 특별대우도 좋았지만, 키친 핸드로 일하며 느꼈던 동료들과의 진짜 인간적인 온기는 그 어떤 럭셔리 서비스보다 값졌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설거지 물결이었다.
호텔 VVIP로 누리던 별빛과 키친 핸드로 일하며 느낀 설거지 물결. 과연 어느 쪽이 더 값진 경험이었을까? 아마 그 답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