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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아이 Mar 24. 2024

현실의 깨달음

마흔에 아르바이트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요즘 7년 가까이 운영한 회사를 떠나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아내와 새벽에 요가를 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면 오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오후엔 수영을 하거나 도서관에 가는 일과를 보낸다. 그렇게 겨울은 지났고 봄이 오고 있다. 하나의 계절을 보내놓고 요즘 들어 나 스스로에게 '도대체 준비라는 것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묻기 시작하게 되었고, '아내도 궁금하겠지?'라는 근심은 시간이 갈수록 의심으로 커져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나는 늘 그렇듯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아내가 다가와 말을 했다. "언니가 혹시 시간 괜찮으면 제부 공장에서 간단한 일 좀 도와줄 수 있어?" 처음 그 말을 듣고 나는 형님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음... 한 번 생각해 볼게"라고 대답을 하고는 하루 이틀을 넘겼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다시 한번 그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좋든 싫든 답을 주어야겠다 싶어 지금의 내 상황에서 그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코스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또래의 친구들 보다는 이른 나이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나에게 컴퓨터라는 것을 배우게 했고 그때의 계기로 교수님의 추천으로 빠른 나이에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1999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터넷 방송국'이라는 신생 회사에 처음 입사를 시작으로 지금껏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IT업종에 몸담아 왔다. 1999년의 시작이 '출발점'이고, 2023년의 '마침표'라고 점을 찍으면 하나의 '선'에 불과할 것이다. 그 점과 점 사이의 시간이 20년이라고 하니, 인생 참 허무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에게 '일'에 대한 경험은 20년의 한 줄이 전부 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여느 친구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딱히 없다.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자면 군대 가기 전 막노동 잡부(당시에 친구들이 군대 가기 전에 으레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로 삼일 정도 나갔던 것이 전부이다.


인생의 후반전이니 세컨드 라이프니 다들 뭐라고 하는데, 나도 얼른 나의 새로운 전환점의 키를 움켜잡고 그 바람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방향을 찾아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제자리에 와 있었다. 그러기를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니 이러다간 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르게 접근해보자 싶어 밖으로 나가서 뭐라도 부딪히며 찾아보자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한 번 해볼게"라며 처형이 제안한 일에 답을 주었다. 아내는 "정말 괜찮겠어? 당신 이제 이렇게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없을 텐데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욱 확고하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일이더라도 끈기 있게 할 수 있는지도 시험해보고 싶어"라고 대답했더니 아내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형님과 처형은 마흔의 중반에서 슬슬 오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결혼 후 시작한 가구공장과 매장을 꾸준히 일구어낸 탓에 그 분야에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두 부부는 나에게 '형'이자 '누나' 같은 사람이다. 항상 나를 챙겨주는 마음씨가 고맙고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가족애'와 '소속감'을 주었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며,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내 기억에 처형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형님을 도와 지금껏 힘을 보태며 나아가고 있다. 나는 내 입으로 하겠다고 했으니 뭐가 되었든 내가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다면 다행이겠거니, 일단 경험해 보자 생각하고 형님과는 언제 몇 시에 오면 된다고 말을 주고받았다. 


공장은 집에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아직은 차갑게 느껴졌다. 하늘은 한라산을 넘어와 내리막 길을 따라 일주도로에서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경계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서로가 파랗고 시원해 보였다. 단지 바다가 조금 더 시커먼 파랑이고 배들이 지나가고 있으니 그게 바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그 풍경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출근하려면 새벽같이 비행기 타고 지하철 타고 그랬는데 걸어서 10분이라니...' 오랜만에 출근하는 길 위에 서있는 기분이 묘했다.


공장은 금세 도착했다. 입구에는 완성된 가구들이 출하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기계에서는 합판을 잘라낼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공장을 찢을 듯 울렸다. 곳곳에서 컴프레셔 소리가 들리면 함께 먼지가 날렸고 그렇게 켜켜이 내려앉은 톱밥들이 구석구석 가득 보였다.


일은 어렵지 않게 딱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재단된 목재를 마감하는 기계에 넣은 후 따라가서 받고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가끔 부두에서 실어온 파레트가 오면 트럭에서 합판을 한 장씩 꺼내서 정리한다. 출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물건이 벽에 부딪혀 새로 칠한 페인트가 긁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했는데, 현장 소장 즈음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야이 곱게 자랐어 이런 일 안 해본 손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소장까지 할 정도니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사람일 테고 그래서 더욱 한눈에 알아차렸을 모양이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형님은 “응 우리 동서, IT출신이라 비싼 인력인데 급하게 도움이 필요해서 싸게 데려왔어”라며 웃으며 소개를 해주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내리는 비를 피해 서둘러 움직였다.



가볍게 흘려 들었지만 비싼 인력과 싼 인력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선택하는 상황이 그럴 거야 라는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름 정도 공장에 출근을 했다. 앞으로 남은 3월 까지는 계속 채워보려 한다. 이제는 곧잘 1톤트럭도 운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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