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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두려웠던 사람들에게

『명랑한 은둔자』

by 금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되었으니 이제는 학사 일정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심지어는 방학도 학교마다 제각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3월이 되면 개학은 한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여전히 동일한 학사 일정이다. 이제는 수능 시즌에 나의 고3 시절을 회상하게 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3월 초가 되면 나의 어린 시절 새 학기로 돌아가곤 한다. 3월마다 겪던 그 생경함을 느끼던 시간을 떠올리며.


어릴 땐 새 학기가 되는 게 두려웠다. 익숙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조합의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게, 지금보다 더욱 내향적이었던 어릴 땐 힘들었다. 1차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는 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새로운 유대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어색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게 몸을 배배 꼬이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살아온 시간만큼 능청스러움이나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어느 정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랄 것도 생겼지만 그럼에도 타고나길 내향적으로 타고난 터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냥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런 내향인을 위한 책이다. 살면서 한 번도 외향인인 적이 없던 사람들,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평온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책.


『명랑한 은둔자』, 캐롤라인 냅


출처: 바다출판

'은둔자'라는 명사 앞에 붙은 '명랑한'이라는 수식어가 모순적으로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향인들은 은둔자 생활을 할 때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니 마냥 안 어울리는 단어들인 것 같지는 않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만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곤 한다.


캐롤라인 냅은 이 에세이에서 자신의 은둔자스러운 삶을 고백한다. 그 출발점은 '고립'과 '고독'의 차이를 짚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립'과 '고독'은 언뜻 보면 비슷한 단어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내가 생각한 걸 덧붙이자면, '고립'에는 '-되다'라는 어미가 붙음으로써 타의에 의해 그 상태에 처해진 게 되지만 '고독'에는 '-하다'라는 어미가 붙음으로써 자의적으로 그 상태에 있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은 숨고 싶은 강박이나 도망, 회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들과 붙는다면, '고독'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가끔씩은 꼭 필요한 시간이 된다.


지금까지 여러 에세이를 읽어왔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내향인의 마음을 가장 섬세하고 예리하게 어루만진다. 내면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바쁜 소용돌이를 품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그 소용돌이를 잘 다루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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