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써머스비와 카스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인상 깊게 읽고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명랑한 은둔자』는 캐롤라인 냅의 은둔자적 성향과 그녀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드링킹』은 그녀의 수많은 모습 중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부모님이 술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릴 적 회상부터 냅 본인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중독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다.
캐롤라인과 아버지의 관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캐롤라인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캐롤라인은 더욱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숨길 수밖에 없도록 자랐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통제적이고 엄격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캐롤라인은 아버지에게 숨길 것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였으며 몰래 술을 마시는 게 강박처럼 되어 버렸다. 캐롤라인은 그런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아버지의 모습들 중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을 닮아간 게 아이러니했다. 반면에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고도 예술을 해내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대조적으로 비춰볼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닮아가는 딸을 어떤 마음으로 봤을지 궁금해진다.
알코올 중독자를 비롯한 각종 중독자는 무도회장의 중앙 무대에 서 있는 셈이지만,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도 그 주변에 둘러서서 때론 경계선 안쪽에 발끝을 댔다가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곤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알코올 중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중독된 대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한강에서 러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이 독서 모임을 하던 분에게 배웠는데, 러닝을 마친 후 나에게 혹시 뭔가를 할 때 주변 안 보고 앞만 보는 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 나는 뭔가 하나에 집중하거나 관심이 가서 빠져버리면 다른 길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중독에 취약한 사람이며 강박이나 집착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다. 약 1년 전만 해도 내가 중독된 것들은 여행이나 카페인 같은 것들이었다. 알코올처럼 건강에 치명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받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반년 동안 술을 꽤나 자주 먹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3번? 많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나는 이 책의 어느 지점에 와있을까? 나는 경계선 안쪽에 있을까, 바깥쪽에 있을까? 그래도 아직은 경계선의 안팎을 오갈 수는 있는 위치였으면 한다.
요새 음주를 자주 하고 있지만 한 번에 과음을 한다기보다는 저녁에 반주로 맥주 한 캔 정도씩 하는 정도다. 어릴 땐 그렇게 카스가 맛없었는데, 요새는 시원하게 느껴져서 꽤나 즐겨 먹게 됐다. 사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과향이 나는 음료들은 좋아한다. 써머스비는 술을 잘 못 마시던 때부터도 달달하게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던 맥주였다.
어릴 때 미디어에 자주 표현되던 고단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있다. 회사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밤늦게 퇴근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주 한 병 마시는 처량한 모습. 어린 나에게는 그게 '어른'의 모습처럼 보였다.(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나에게 두려웠다.) 하루종일 온갖 고생을 하고 난 후 소주나 맥주로 털어버리는. 소주는 원래도 쓰다지만 고단한 삶의 모습과 연결되는 맥주는 사과향이 나는 달달한 맥주가 아니라 카스 같은 기본 맥주일 것이다.
이제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도 신분증 검사를 받지 않는, 누가 봐도 어엿한 성인이다.(그래도 어른이라는 건 고단하긴 하지만 어릴 적 내가 두려워하던 만큼은 아니다. 꽤나 버틸 만은 하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부터 봐온 이미지로 따지면 회사에서 힘든 날일수록 나는 카스를 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힘들었던 날일수록 달달한 써머스비 같은 맥주를 마시게 된다. 반면에 하루를 가뿐하게 보낸 후 운동으로 개운하게 마무리를 하는 날이면 카스를 마시게 된다. 왜 나는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심어진 이미지와 반대로 마시고 있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