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향기가 있다면 폭력에는 지울 수 없는 비린내
사랑에는 향기가 난다고 한다.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특히 장미와 같이 아름다운 꽃 향기에 비유하거나 달달하고 따뜻한 냄새를 표현하며, 잊을 수 없다고 찬사를 보낸다. 단 한 명의 문학인도 사랑의 순간을 악취가 난다거나 개똥 냄새라고 표현하진 않더라. 그렇다면 사랑이 향기가 있다면, 폭력에도 악취가 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인생의 경험을 돌아봤을 때, 가정 폭력을 당하고 겪은 이들에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차이점이 있다. 가정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가정 폭력은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것만큼 1차원 적이지 않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때리거나,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눈에 띄게 방치하거나 그런 케이스들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맞고, 엄청난 심리적 압박은 아니지만 평생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라는 폭언을 들으며 눈치 보며 성장하고, 더벅머리가 된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는 것조차 죄스러워야 했던 어린 시절도 충분히 가정 폭력에 노출된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가정 폭력은 꼭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면서 만난 많은 친구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모두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내가 당한 것이 가정 폭력인지 아닌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몰랐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나이가 한참 더 들고서야 겨우 받아들이게 되는 수순을 밟은 것이 특징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사랑의 매'라는 말과 폭력적인 훈육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아이의 나쁜 행동을 빠르게 바로 잡을 수 있으며,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이로 인해 부모의 체면이 설 수 있었다. 요즘 들어서야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며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는 방법이나 문제 아동들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만천하에 드러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에서는 물론이요 집에서도 잘못하면 그날은 두드려 맞는 날이었다. 심지어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게 하는 부모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라나던 시절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뺨을 맞았고, 멍이 잘 들지 않는 부위만 골라서 맞았다. 사전이나 네모난 책으로 파리채처럼 맞으면 멍이 안 든다는 사실도 맞으며 알았다. 그리고 맞는 내내 부모의 인생 한탄을 듣는 것도 내 몫이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부모의 성화로 일찍 결혼해 원하지도 않는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사실이 너무 힘들고 고역인 데다 다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부모 둘 다 비슷한 내용이었고, 가끔 추가되는 내용 정도는 여자애가 말을 안 듣는다며 본보기로 더 때리겠다며 장남인 남동생을 세워두고 본보기로 더 때렸던 기억이다. 이렇게 맞고 나면 어린 기억에 죄송스럽다는 생각보단, 내가 낳아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당시 2002년 월드컵 4강전이 한참이던 해, 12살인 내가 친구 집에서 서로 얼굴에 작은 국기를 페이스 페인팅 도구로 그렸던 날 매 맞고 느꼈던 감정이다.
이러한 기억을 곰곰이 되짚다 보면, 에피소드도 많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그 어떤 상황에서 꺼내기도 어렵고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니, 속으로 숨기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도 반문했듯, 사랑에 향기가 있다면 가정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에겐 냄새가 난다. 정도가 다를 뿐이고, 나이가 들어 사랑을 하며 향기로 덮더라도 묘한 생선 비린내처럼 그 냄새는 없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가족 간에 불화나 폭력을 경험한 이들은 묘한 연대감이 빠르게 생긴다. 해당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같은 냄새가 나는 이들끼리 알아보는 건지 몰라도,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나 배경을 이야기하다 보면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혼자 학원을 등록하러 갔던 날 느꼈던 초등학생 시절의 창피함이나, 혼밥이 유행하기 전부터 혼밥을 해왔다며 10살 때부터 혼자 밥 먹으러 다녔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에게 공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평생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자라온 자신의 연인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며 묘하게 대화가 안 통하는 부분이나, 내가 느꼈던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에 대해 처음엔 "너무 불쌍하다"라는 반응에서 천천히 "그래서 어쩌라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라는 반응에 말 문이 막히는 경험도 얼추 비슷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들은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나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냥 서로에게 공감하며 너도 고생했다는 응원으로 내 앞에 앉은 아이를 위로하고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이날 이때까지, 나이가 이만큼 들어도,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학대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며 스스로를 꾸준히 착취당하게 놓아두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좁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정말 훈육이 아닌 폭력을 당한 건가 인정하는 것에 대한 슬픔, 게다가 추후 연인이나 배우자가 생겼을 때 가족들과 연을 끊고 산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 나아가 가족 관계가 회복될 것을 바라며 인연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우리의 가해자들은 늙고, 우리들은 강해졌다. 경제적으로나 여러모로 시켜 먹기 좋은 성인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과거 폭력의 시간은 흐릿해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지우고 잘 지내는 척하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것이라도 받아들이며 남들처럼 나도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게 안된다면 내가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몸에 스며든 냄새는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문득 그 당시 나를 때리던 부모의 나이가 되어 보니, 더더욱 이해가지 않기 때문이다. 30대가 넘었던 성인의 정신 수준으로 자기보다 아주 작고 어린아이를 왜 그렇게 미워하고 때렸던 걸까? 뭐가 그렇게 보기 싫어서, 아무리 사회적으로 압박받아 '강제로' 출산한 자식이 밉더라도 그렇게 화풀이하듯이 악담하고 갈궜던 건지 지금 내가 33살이 되어 보니 더더욱 이해도, 공감도, 용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들어서, 교육을 위해서 그랬다고 이해해 주기엔 내가 너무 컸고 비겁한 이유라는 걸 알고 말았다.
누군가는 배우자의 사랑이나 자기 자식이게 다른 부모가 되어 주며 사랑의 향기로 냄새를 가릴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아름답고 독특한 향기로 바꿔 나갈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친구나 사람들과 치유하며 나아갈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폭력을 휘두르던 부모가, 가족이 다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종속하며 악취 속에서 코가 둔해질 때까지 견디기도 할 것이다. 그 선택이 어찌 되었든, 우리가 가진 냄새가 일 평생 사랑만 받아 향기를 내뿜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럽지 않기만 바란다. 서로의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는 건 괜찮아도, 향기를 내뿜는 꽃 같은 이들에게 "어휴, 너네 집 왜 그래?"라는 말만큼 창피할 때가 없더라. 당신의 향기가 진하다면, 묘한 냄새가 나는 이들을 조금만 넓은 아량으로 바라봐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