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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Jan 15. 2024

30대, 5성급 호캉스는 필수-돈도 없고 애도 없지만

평균 몸무게 75kg 여자 무주택 딩크족, 싱글, 자영업자도 즐겨요

아직도 '호캉스' 키워드가 핫한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전히 추천 호텔, 주말 호캉스 즐길만한 곳 등등 많이 추천글들이 올라와있다.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척점에 서있는 키워드들이 유행하는 것 같다. 호캉스, 오마카세, 해외여행, 풀빌라 - 갓생 살기, 무지출챌린지, 하루 100 포인트 모으기 등등. 극단적인 저축과 럭셔리한 취미 생활들이 뒤죽박죽 되어 있다. 열심히 사는 갓생 살기 콘텐츠와 동시에 하루에 2시간 일하고 한 달에 월 천 벌기 이런 콘텐츠들도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내 정신머리처럼 하루에도 십 수 번 오락가락하는 게 사람들 마음인가 보다.

 

91년생의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나는 가끔 한국의 이런 트렌드를 보고 있자면, 미국도 별 다를 바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끄덕거린다. 종종 해외생활을 갓 시작한 분들이나 10년 이하의 생활을 하신 분들은 마치 미국인들이나 기타 서양인들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늦어도 괜찮다며 아주 여유롭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것 마냥 표현해 놓은 글을 꽤 많이 읽었는데, 그들을 깊게 알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회사에서 나이 비슷한 애들끼리 파벌을 형성하고, 술도 마시러 다니며, 같이 앉아 어느 팀에 누구는 루이비통을 들고 다니던데 회사는 왜 다니는 거야?라는 험담부터 일도 못하는 누구네 팀장은 연봉이 얼마래,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한탄부터 페이스북에는 미국 포스브나 야후에서 작성하는 출처도 알지 못하는 '부업으로 한 달에 2만 불 씩 버는 20대 여자' 이런 류의 기사들이 쏟아지니 말이다. 게다가 럭셔리한 호텔에서 흰 가운과 머리를 싸매고 선글라스를 낀 채 브런치를 즐기는 미국 인플루언서들의 글에 좋아요가 터져나가는 걸 보면, 미국인들의 정말 깊은 마음속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훨씬 자신의 속내에 솔직하고,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은 아주 가까워지기 전까진 이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이론적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비교를 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너 스스로를 사랑해라는 겉핥기식 이야기로 마무리하며 나중에 본인들이 친한 모임에 나가 이빨 까기 일쑤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지만, 미국에 16년간 살며 미국 친구들이 퇴근하고 술마시 자고 전화하고, 울면서 회사 사내 정치 상담을 내게 하는 일이나 각종 개인 가정사도 드러낼 만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알게 된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아주 많이. 여기에 남편이 유럽 사람이라, 유럽 애들도 죽마고우 하며 지내며 그들이 쏟아내는 생각이나 속내를 조용히 듣는 연차가 길어지다 보니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종자 상관없이 똑같구먼 이라고 다소 염세적인 생각을 하는 33살이 되었다.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서양인들을 무지성으로 감싸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 속으로 '뉘예 뉘예~ 님 집에서 엉덩이 끈질며 방귀 뀔 만큼 가까우신 서양인들인가요?'라고 속으로 반문하지만, 이해는 간다. 나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미국인이든 뭐든, 자본주의에 잠식된 곳에서 사는 우리는 원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 강제로 싫은 사람들 얼굴을 마주하고, 월급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며 종종 '그래도 이 정도로 사는 것에 감사하자'라며 자위를 하다가 '아, 생각하니 너무 현타 오네. 배달시켜 먹어야지.'라며 홧김에 비용 지출도 하는 이런 삶인 것이다. 


중학교 동창 S, 친구 한 지 벌써 17년 


무튼, 91년 생인 나는 밀레니얼 세대로 대다수 내가 아주 가깝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동년배들이다. 친구라는 두리뭉실한 단어에도 깊이가 다르지 않은가. 내가 미국으로 유학 오고 나서도 꾸준히 친하게 지내던 내 친구 S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15살의 나이보다 더 많은, 17년째 친구를 하고 있는 중학교 동창이다. 사실 92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다. 빠른 년생으로 항상 반에 한 두 명 있던 친구였는데, 난 91년 3월생으로 거의 1년이 차이가 난다. 이 친구랑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도 많고, 성격도 잘 맞아 오랜 시간 사이좋게 지내왔다. 상당한 가정불화와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성장 배경이나, 여러모로 노는 걸 좋아하는데 항상 남보다 못한 가족들로부터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점이나 엇비슷한 공감대가 많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우울하고, 듣기 힘든 말이며, 불편하니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며 얼른 다른 주제로 넘기기 딱 좋은 내용이다. 근데 막상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웃으며 나에겐 이러 일이 있고, 저런 일이 있었으니, 앞으론 호구로 살다가 둘리가 되지 말자 이런 이야기로 서로 지적하고 더 나은 태도를 결심하며 나름의 피해자들의 연대를 단단히 한다. 여전히 10대 시절, 롯데리아 데리버거를 사 먹을 돈만 겨우 가지고 있던 우리가 이젠 어른이 되어 같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해외여행을 다닌다. 심지어 1년에 얼마 안 되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고대한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MZ세대의 욜로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거나 그 돈 모아서 빨리 집사라는 경제 유튜버들도 많지만, 누가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나? 싶다. 미안한 말인데, 그런 비판을 하기 전에 술도 잘 안 마시고, 맨날 돈도 아끼고, 커피도 잘 안 사 먹고, 물가는 오르는데 내 지갑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더 좋은 일자리나 밥벌이도 없으니 매일 도닦으며 소소한 운동, 취미생활로 살아가는 밀레니얼들에겐 백날 경매 낙찰받아서 부동산으로 돈 벌라는 둥 아파트 분양을 받으라는 둥 이런 건 와닿지 않는다. 아끼라는 건 평소에 다 아끼고 포인트도 열심히 주워 담지만 1년 열심히 모아도 몇 천 모으나? 근데 집 값은 여전히 나와의 거리감이 상당하다. 영끌해서 융자내서 사라는데, 내 밥벌이가 철밥통이 아닌 데다가 갑자기 잘리거나 너무 죽을 것 같아서 퇴사하면 어쩌나. 이런 거 잘못했다가 잔고가 박살 나면, 그 어디 기댈 곳도 없는 사람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찾아올 것이기에. 조용히 연금 저축과 대표주 주식만 좀 쌓아두고 보험료나 잘 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나의 사정도 매한가지라, 회사 다니며 쌓는 미국식 연금 401k, HSA, IRA를 맥시멈으로 매년 채우고 남으면 소소하게 저금하는 걸로 끝낸다. 더 하고 싶어도 돈도 없고 인생이 너무 불확실해.


이런 사정에 가장 확실하고 즐거운 행복은 여행이다. 1년에 많이 봐야 열 손가락 꼽을 정도로 보는 친한 친구랑 여행은 보장된 재미다. 중학교 같은 반일 땐 친구들을 매일 봐야 하는 일상이 싫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 1년에 친구 한번 만나는 게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서있는 곳이 달라지는 친구들과 공통점이나 접점을 찾기도 힘들어지니, 어릴 때 친한 친구와 계속 30대가 되어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어떻게 보면 아주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친구, 사회 친구 등 인간관계의 지속은 계속되지만 가장 숨김없던, 어릴 때 시절을 알아주는 친구와 오래 잘 지낸다는 건 마치 둥둥 떠다니는 외로운 우주 속 나와 같은 유기 생명체를 만나는 즐거움이랄까. 


그래서 각종 미디어나 유튜브가 젊은 사람들의 경제관념에 비난을 퍼부을 때도, 일 년에 많아야 한 두 번 진심을 다해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외화 유출이라고 비난하는데, 미안한데 한국 여행도 내게는 해외여행이다. 미국 교민으로서 한국 여행도 좋아서 여러 번 했는데, 한국은 요즘 물가가 너무 비싸서 사실 어디 가서 맛있게 식사하기가 무섭다. 한국 웬만한 호텔이나 모텔 숙박비용도 서울 기준 가볍게 7-15만 원이니, 나의 존재 자체가 비싼 것이다. 이러니, 친구들과 시간 맞춰 한국에서 놀다가 동남아로 여행을 가면 음식도 맛있고 숙박비도 저렴하고 여러모로 즐겁다. 비행기는 저가 항공을 통해 구매하고, 친구들의 월차 계획을 세우며, 우리의 여행 계획을 세우며 그 과정에서 깔깔 웃으며 마치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는 기분도 낸다.


호텔 조식도 잘 챙겨 먹어요 

S와는 여러 나라를 함께 여행했다. 대만 한 번, 태국 두 번, 베트남 세 번, 말레이시아 한 번, 미국 두 번. 곧 또 한국을 방문하고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딱히 우리가 돈이 많아 5성급 호캉스를 과감하게 지르는 건 아니고, 내가 열심히 출장이나 신용카드 포인트를 모아 호캉스로 털어버린다. 미국에는 우리나라보다 신용카드 포인트를 모으는 게 쉽기도 하고, 좋은 프로모션을 찾아 열심히 신용카드 철새짓을 하며 거의 포인트 신봉자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친구와 여행 때 과감하게 사용한다. 그럼 우리의 한정된 비용에서 아주 럭셔리한 호캉스를 즐기며 이런 호사가 있다니 하며 즐거워하는 게 루틴이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 덥기도 하고, 딱히 예쁜척하고 사진을 찍는 것에 취미가 없는 우리는 빨래하는 게 귀찮아 각자 버리기 직전의 옷을 입고 현지에서 버려 버리는데 그래서 고급 5성급 호텔에 반 거지 꼴을 하고 체크인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상당히 언발란스해 웃음이 절로 난달까. 해외여행을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 넘게 다녀오는 우리의 여행 속 호캉스란 일상에서 즐길 수 없는 추억이자 즐거움이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작은 기숙사, 저렴한 월세를 내고 웃풍이 굉장한 소박한 시카고 아파트에 사는 우리가 매우 친절하고 호화로운 곳에서 숙박을 하며 이래저래 사우나나 수영장을 즐기다 보면 "캬, 나도 이런 호사를 즐길 수 있다니."라고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같이 포인트를 털어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나도 즐겁다. 친구는 의례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며 평소엔 엄두도 내지 못하던 현지의 럭셔리한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며 서로 이런 삶이 매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새로운 경험에 행복감을 공유한다.


최근에는 S와 함께 친하게 지내는 D 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셋이서 럭셔리한 3층짜리 단독 주택을 빌려 맛있는 베트남 음식을 시켜 먹으며 수다 떨며 누워 있으니, 내가 원하는 즐거움이란 딱 이런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현지 젊은 대학생 가이드들이 보여주는 베트남의 이모저모와 생경한 풍광을 보고 있자면 그 순간의 기억은 마치 아모레드 LED 색감으로 저장된다. 일상이 회색 필터가 낀 듯 기억도 안 나게 바쁘게 흘러간다면 여행은 아드레날린이 뿜어 나오는 롤러코스터처럼 빠르달까. 셋 다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고도비만으로 평균 75킬로의 무게답게 맛집 탐방과 베트남의 골목골목을 열심히 즐겼다. 베트남에서는 호캉스가 아닌 여러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거대한 대저택과 사진과 사뭇 다르던 작은 현지인의 옆 집에서 보냈다.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웃었던 학창 시절처럼, 에어비앤비에서 배달 음식을 뜯다가도 웃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여유

D 언니는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꽤나 잘 알려졌고, 사업도 어느 정도 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궤도에 오른 듯 보이나 실상은 회사원인 S나 나나 별반 다를 바 없이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사업 자금과 대출의 무한 굴레 속에서 매일매일 12시간씩 고강도로 근무하고 있는 언니의 속내를 듣다 보면, 밀레니얼 세대도 기성세대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미디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마냥 보도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도대체 누구와 인터뷰를 하는 것인지. 뭐, 이런 걸 비교해 봤자 불행 배틀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도 기성세대와 다른 점이라면, 이런 고강도의 업무와 높은 물가 속에서 결혼이나 아이를 놓고 사는 평범한 삶은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익히 체감하며 성장한 만큼 과감히 출산하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나와 D 언니는 결혼을 했지만 딩크족으로 살고 있고, S는 싱글이다. 우리들 모두 베트남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한국 사회가 아이 놓는 사람들을 애국자라 부르며 문제라고 지적한들, 내 경제 상황과 집과 절도 없는 앞날을 보고 있자면 애 같은 소리 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여행이라도 안 가면 정말 숨 막혀서 죽고 싶을 거야"라는 말과 함께 여행 와서 행복하다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1년에 한 번, 100-200만 원을 써서 2주 정도 여행을 안 한다고 해서 그 돈이 내 집값이 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홧김에 열받아서 먹는 마라탕이나 쓸데없는 물건을 지르는 데 사용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음식과 물건과 홧김에 하는 무언가 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우울해지고, 어느 날 오후 문득 이유 없이 화가 나게 만든다. 다른 취미를 가져보라 할 예정이라면 넣어두시라. 이미 웬만한 취미 생활은 다 해봤고, 취미 생활은 공짜입니까? 유튜브에서 명상이니 마음 수련을 하다가 현타만 오는 사이클을 경험하다 보니, 이젠 그냥 군말 없이 우린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아차, 돈 없긴 하네. 그래도 빚내서 가는 거 아니고, 어떻게든 벌 수 있겠지, 내가 맨날 멍멍이처럼 일하면서 이것도 못하냐, 난 술도 안 마시고 딱히 돈 쓰는 곳도 없는데-라면서 말이다.


30대, 돈도 없고 애도 없는 내 친구들과 종종 다니는 해외여행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손가락질해도,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다닐 예정이다. 돈 보태줄 거 아님 가슈-라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소리치고 싶다. 같이 가고 싶으면 여행 계획은 공유해 드립니다. 30대 5성급 호캉스는 필수, 포인트도 너무 오래 안 쓰면 사라진다고요. 알뜰살뜰한 밀레니얼들의 '즐김'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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