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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able K Papa Feb 21. 2024

결코 아름답지 않은 나의 유학 이야기 #1

Capable K-Papa

이전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나눈 이야기들이 삶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책 [퀴닝 (Queening]에 소개할 내용 중 제가 살아왔던 모습을 조금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이전 글에서 소개 드린 것처럼 가정의 두번의 부도로 인해 해외에서 방황하게 미아처럼 떠돌다 마지막 남은 기회로 집에서 얼마남지 않은 모아주신 작은 생활비를 가지고 싱가포르 국제학교에 지원하여 2년만에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당시 2년간은 거의 하루에 3시간 조금 넘게 자고 원어민 친구들 사이 영어로 교육하는 고등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늘 고분분투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과정의 이름은 '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로서 총 7개의 과목 중 철학과 영문 문학 등 실제 미국과 영국의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모국어로 필수로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논술'도 과목안에 있었습니다 (매주 에세이를 제출했어야 했는데 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서울대 국문과에 보내 채점을 받았었습니다)



심지어 그외에도 특별 활동에서 2년간 총 180시간을 채워야 했고 'CA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과정은 지역 봉사활동 (요양병원), 스포츠(럭비), 서비스(웹사이트)를 각 60시간씩 달성해야 했습니다.



특히 수학과 생물학, 화학은 심화 과정으로 고2학년 (11학년) 입학 설명에서 대학 1학년과 동일한 커리큘럼을 배운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본 지식이 전무했던 저로서는 첫수업부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하루 점심을 먹고 파란색 큰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포장지를 버리려고 하는데 코에서 검붉은 코피가 덩어리째 후드득하며 쏟아졌습니다. 지혈이 안되고 있는데도 억지로 코를 틀어막고 다시 화학 수업을 받으러 뛰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학교는 당시 졸업식에서 학생이 어느 나라의 대학에 어떤 과로 지원했는지 한명한명 소개를 해줬습니다. 졸업식 끝에서 마지막 2번째로 앉아있던 저는 "Dae Wook Lee, U.K., Medicine" 이라는 발표가 호명되자 제 그간의 여정을 알고 있던 친구들과 부모님들은 모두 환호성으로 한 마음같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영국으로 가는 출국날, 공항에는 친구와 형, 누나를 비롯해 무려 43명이 저를 배웅해주었습니다. 저는 출국대를 지나기전 마지막으로 큰절하듯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그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공항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지르며 한국어로 모든 분들께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약 8시간을 비행하여 도착한 영국 쉐필드는 추웠습니다. 당시 10월 초였는데 공항에 내리자말자 안개인지 비인지 모를 바람과 왠지 삭막한 공허함만이 감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도 혼자 집을 구해서 살다보니 대책없이 일단 일주일 정도 숙소만 구해놓고 온 상황이었습니다. 어차피 비행기 값과 소정의 생활비를 준비해주신 집에서도 1년 단위로 내는 기숙사비까지 마련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가로등도 없는 곳을 몇번이나 지나 오래된 벽돌이 있는 건물 앞에 저를 내려주었습니다. 저는 달랑 캐리어 하나에 손가방 하나를 들고 내렸고 옷은 싱가포르에서 입던 그대로 얇은 흰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던 때 벽돌이 있는 건물 1층에서 사람들의 술 마시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주소는 여기가 맞을텐데 숙소 같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15분 정도 주위를 빙빙 돌다 마침내 1층은 PUB, 2층을 숙소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인인 제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좁은 통로를 지나 배정 받은 방이 사진에 나온 방입니다. 당시 제 나이보다 더 많은 것 같은 TV와 언제 세탁했는지 모를 침대, 걸을때마다 끼익끼익 소리나는 바닥에서 저는 제가 그토록 기대했던 영국에서의 첫날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미리 연락을 주고 받던 당시 한인교회 회장이셨던 형님을 통해 귀국하시는 분과 연락이 되어 감사히 집을 구하게 되었고 그 집은 총 7명의 학생이 Share하는 낡은 아파트 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집 안에는 구름이 있었습니다. 저 외 나머지 6명이 담배를 워낙 많이 피우다보니 늘 구름같이 뿌연 연기가 있었고 새벽 2시가 되면 클럽에 다녀온 옆방 친구가 구입한 공연용 스피커 우퍼에서 나오는 싸구려 힙합 음악에 제 방 벽도 비트에 맞춰 흔들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그 때 저는 해동검도를 배우기 시작할 때라 늘 수련용 목검 두개를 가지고 다녔지요. 그러다보니 그 친구들도 저를 피하고 저도 그 친구들을 피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당연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게 한인 지인이 만들어주신 김치를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 공동주방에서 열자말자 쇼파에서 프리미어 리그를 보던 영국 친구들이 소리지르고 욕을 하며 창문을 여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 뒤로 혼자 방에서 거의 삭아가는 김치를 조금씩 먹었습니다.



영국 대학은 공과 수업도 따라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1학년 1학기 시험에서는 최소 PASS가 40점이었는데 생물학에서 42점을 받았습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더이상 뒤돌아 볼수 있는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하루하루 싱가포르와 같이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제 공부법을 중점적으로 다음 포스팅을 통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 첫번째로 올리는 유학 시절 얘기인데 벌써 글자제한이 되어가네요. 다음 편에서는 영국 시장에서 개 사료를 사와서 먹으려다 제지당했던 얘기와 독학으로 개발했던 공부법을 통해 옥스퍼드 의대에 지원했던 무모했던 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choSphere#유학이야기#영국#의대#Medical#Story#Life#DaeWookLee#Que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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