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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May 30. 2024

유방암 자가치료법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암을 먼저 알아야 하니 암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거나, 생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암세포로써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암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기 때문에 감기나 장염처럼 증상이 있다거나 통증이 있지는 않다. 다만 세포의 크기가 커져 신경을 누르거나 장기에 영향을 끼치면 그때부터 통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면 이 오류가 빈번해지기 때문에 노화가 암의 발병 인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사람은 암에 걸릴 수 있는 인자를 가지고 있고, 확률의 차이로 암은 발생한다. 말하자면 '운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암 환자는 결코, 무조건, 절대적으로 내가 잘못 살아서 암이 찾아왔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도리어 죄책감은 스트레스를 발생시켜서 회복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니 그럴 생각을 할 바에는 등산을 시작하도록 하자.      


    기승전 등산이라니 당황스럽겠지만 들어보라. 암세포도 결국 우리 몸의 세포이긴 한데, 오류가 생겨서 '정상적인 작용'을 못하다보니 암세포로 자란 것이다. 따라서 불쌍한 이 어린양이 정상적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내 몸을 그렇게 만들면 된다. 세포가 정상적인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산소를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숨을 크게 쉬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운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피톤치드 가득한 등산이라는 말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 이론인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가고 싶었던, 이름부터 상쾌한 영남알프스의 산행을 마음먹었다. 85년생에 어울리지 않지만, 산골짜기에 연탄불을 피우고 가마솥을 사용하던 집에 살았던 촌년은 등산에 꽤나 '빠싹'한 편이다. 원래 '악'소리가 난다는 설악산을 가고 싶었는데 설악산을 간다고 하면 친정엄마에게 ‘악’ 소리가 날 때까지 등짝을 맞을 테니 가까운 신불산으로 가기로 했다.


    강한 여성은 평소 등산스틱 따위 사용하지 않지만, '불'의 산 신불산은 사족에 불이나게 보행을 해야했다. 분명히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고 있었고, 날씨도 등산하기 딱 좋은 날이었지만 '불'나게 험해서 그런지 등산객 하나, 개미새끼하나 없이 조용하고 스산했다.


'아.... 되돌아 가야하나...'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게 더 비효율적일 것 같아 두 시간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올랐더니 블로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칼바위 공룡능선이 나타났다. 누군가 말했던 ’그곳에 산이 있으니 오른다‘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바로 이 맛에 등산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과 자유. 그리고 발 하나 잘못 디디면 암으로 죽기 전에 실족사해서 죽을 것 같은 공포. 일단 암 환자가 올 만한 곳은 아닌 듯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공룡능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암을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이 몇 배는 더 커진다는 것을 시사했다.


    혼자 수줍게 인증샷을 찍고는 해가 뉘엿뉘엿 지기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급히 하산을 시작했다. 몇 분 후, 유명한 간월재 억새 평원이 펼쳐졌고, 관광객을 위한 잘 다져진 끝없는 계단과 그것을 통해 오르는 커플들이 인증샷을 찍어대며 우르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 나는 험로로 올라온 거구나.'


    살아가면서 걷게되는 길은 편한 길 일수도, 험한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걷는 동안은 어떤 길로 걷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직 그 길의 끝에서야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내가 걸어온 길을 지금 되돌아보니 대체 어떻게 걸어왔는지 알 수 없을정도로 빼곡한 미로가 펼쳐져 있었다. 어떤 미로의 막다른 길은 무식하게 벽이 뚫려있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고 억울했는데 지금와서보니 그저 놀랍고 대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나를 대단한 사람 취급하지 말아 달라. 저 길은 홀로 걸은 길이 아니다. 나는 저 길을 걷기 위해 '저 너무 힘들어요'하고 수 없이 외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수도 없이 깨지고 넘어지며 험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티타늄 등산스틱과 최고급 등산화를 건네며 잘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도 당신들에게 ‘삶’을 전하려 한다. 그러니 몇 발자국만 좀 더 걸어보자.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꼭 말해주길 바란다.      


“잘했어. 고생 많았어.”            




    항암을 하지 않았던 내 판단은 옳았다고 끝까지 믿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신불산 돌계곡 밑바닥까지 추락할 것만 같으니까. 고된 간병에 수면부족으로 스트레스가 엄청난 몸에 항암제를 때려 부으면 지금 이 시간까지 살아있지 않았을 것은 확실하다.내게 있어 '항암'은 아버지와 남동생의 사망 직전까지 풍겼던 역한 냄새로 남아있다. 물론, 그들의 암과 나의 암종은 다르고 그때와 지금의 항암약은 다르겠지만 내가 항암약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같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하지 않은 오류를 상쇄할 치유법을 찾아다녔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우리의 몸은 충분한 자정작용을 할 수 있고, 몸에 좋은 것을 하는 것보다 안 좋은 것을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먼저, 몸에 안좋은 '독소'를 빼기로 했다.      


    암환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커피 관장', 일명 거슨요법이라는 것을 해봤다. 커피를 우려내어 체온정도로 덥혀 관장액을 만들고, 똥꼬에 넣어 참아내는 식으로 관장하는 것인데 아, 믹스커피가 아니니 거부감을 가지시지 마시라. 자세한 효능과 방법은 '커피 관장'이라고만 찾아보면 많은 자료를 섭렵할 수 있으니 나는 '내 생각'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커피 관장은 대장과 연결된 관을 통해 간 내의 담도를 확장시켜 간에 축적된 독소를 대장으로 빼내는 신박한 디톡스 방법이다. 가장 큰 부작용은 '효과가 증명이 안되었다'고 하는것. 하지만 들어보라. 항암제의 효과는 '암의 축소'이지 '암의 제거'가 아니다. 암의 축소만으로도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커피관장도 마찬가지로, 암을 축소시키는 직접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더라도 간에 축적된 독소를 빼내어서 간이 정상적으로 독소를 제거하게 만든다면 암세포가 생기는 '오류'를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숙변이 배출되니 혈색이 좋아지고,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달고 살았던 나에게 원활한 장운동을 가져다 주는 것만으로도 커피 관장은 기분 좋은 해법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디톡스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간청소를 하기 위해 '기적의 간청소'라는 책을 구매해 정독했다. 이를 위해서는 3주전부터 준비가 필요했는데, 이름도 생소한 앱솜솔트를 직구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나, 내 몸은 단식을 하며 간청소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엄청난 저혈당과 저혈압, 그리고 천장까지 뿜어대는 폭토를 하며 응급실에 실려감으로써 강제 종료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렇게 겪어야만 깨닫는가 보다. 암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유방암 마저 허투니, 삼중음성이니 호르몬양성이니 여러 종류의 유방암이 있다. 그리고 그 유방암이 걸린 사람마저 젊거나, 늙거나, 한국인이거나, 외국인이거나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나에게 맞는 유방암 치료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암의 진행과정에만 집착하게 된다. 암에 걸리면 뭘 해야 이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암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야 전이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암은 '운빨'이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할 수 없다. 다만 세포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비정상적'인 자신의 생활습관과 마인드를 모조리 뜯어바꾸면 그 '운빨'을 낮출 수는 있다.


"항암을 고생하면서 했는데 누구는 몇년안에 재발했다더라."

"누구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재발했다더라."

"누구는 수술하자마자 전이가 되었다더라."


    그렇게 '카더라'에 잠식당하는 그 순간부터 '나'의 암보다 '남'의 암을 따라가게 되고, '남'의 암에 좋다는 것만 따라하다보니 '나'의 암에 좋지 않은 것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날은 병원에서 어떤 환우가 말을 붙여왔다. 그 환우는 일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내가 반응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것들을 쏟아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수술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유방암 환자다. 게다가 뼈 전이 소견까지 받아놓은 상태라 누군가의 마음을 오롯이 받아낼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자신과 같은 유방암' 이야기를 나누며 고통을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픈 것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두명이 된다는 이론을 가진 INTJ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세포들 중 전이 세포가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는 미토콘드리아 같은 가능성을 고민하기보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할지를 더 고민하는 편이라 함께 울어줄 수 없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그 환우는 본인의 유방암에 대해 너무 몰랐다. 그저 유방암에 걸린 슬픔만 말했다. 슬픔만 주구장창 이야기 하면 슬픔만 커지지 않는가? 그럴바엔 슬픔에 대해 ‘남’에게 묻지 말고 ‘나’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대상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나 역시 남편을 입원시켜놓고서야 물어볼 여유가 생기긴 했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도 여전히 불균형한 몸상태를 알아챘다. 내가 한 광배근피판술은 자가조직을 이용하기 때문에 몸에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가슴과 등을 다 난도질 해야 하는 큰 수술이었다. 게다가 등의 광배근을 앞가슴으로 가져와서 그런건지 등 운동을 하면 가슴이 울룩불룩했다. 어깨를 곧게 펴면 가슴이 땡겨서 어깨가 위축됐다.

 

    확실히 수술이라는 건 하고 나면 몸이 많이 망가진다. 몸에 칼을 대어 근육이며 살이며 다 찢어놓으니 도마뱀이 아닌 이상, 회복이 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왕년의 보디빌더였던 남편에게 직접 전수 받았다고 할 지라도 수술로 비뚤어진 자세로의 운동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뿐. 필라테스라는 운동은 재활치료에 특화되어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추 디스크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1:1 레슨을 받기로 했다. 거금이었지만, 유방암 수술 이후 나에게 선사하는 첫 투자인 셈이니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살았던 것을 잠시라도 접고, 나에게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내가 건강해야 누군가를

위해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나 좋은 글귀로 읽어댔던 말이지만 이제서야 나에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암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해 나가다보니 꼭 지켜야 할 건강 수칙들이 생겼다.


1. 수면을 꼭 규칙적으로 8시간은 잘 수 있도록 노력할 것 – 그렇다고 수면시간을 못 채운 것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 것

2. 운동을 꼭 할 것 – 그러나 절대로, 제발, 척추를 뿌아먹는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 것

3. 하루에 두끼는 꼭 식사를 할 것. 입맛이 없어도 뭐라도 먹을 것.

4. 당의 섭취를 줄일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좋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몸에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말해주겠다. 암 병동의 대부분의 환자들에게서 짧은 수면시간, 혹은 불규칙한 수면패턴으로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금 야밤에 브런치를 보고 있는 당신. 빨리 자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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