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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Lee Aug 22. 2024

15년 만에 이룬 꿈

쎄에서 피스테라를 거쳐 피스테라 등대까지

2023.11.19 일요

산티아고 순례길 40일 차


Cee 쎄 ~ Fisterra 피스테라 ~ Faro de Fisterra 파로 데 피스테라

12.92km + 3.01km / 3시간 50분 + 52분 / 비-흐림-맑음




마지막 날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날씨는 끝까지 우리 편이 되어 줄 마음이 없나 보다. 기상 예보에 따르면 11시부터 그친다고 하여 인근 카페에 앉아 있다가 시간 맞춰 길을 나섰다.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으나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다.


10km가량 걸으니 바닷가 모래사장이 나왔다. 15년 전 해변가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나도 결혼해서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해하던 젊은 부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점심 식사 장소를 검색하고 있었다. 마침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이태리 출신이란다. 이태리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기준이 높다. 근처에 추천해 줄 만한 식당이 있느냐 물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2~3곳을 알려주었다. 심사숙고하여 방문한 음식점은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바닷가 마을에 온 만큼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이태리인은 미식가라는 편견이 굳어졌다.





일몰 시간에 맞춰 Faro de Fisterra(파로 데 피스테라, 피스테라 등대)로 향했다. 등대 건물 뒤편 절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서양 위에 작은 고깃배가 떠 있었다. 노을은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늘 신비하고 아름답다. 15년 전에도 순례자 동료들과 이곳에서 석양을 구경했었다.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비로소 순례를 완주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다. 내일부터 걷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서서히 해수면과 가까워지는 태양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목표했던 약 900km의 여정을 40일 만에 마쳤다. 많이 고되었을 텐데 끝까지 군말 없이 함께 해준 아내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맙고 미안했다. 좀 더 맞춰서 걸을걸, 덜 보챌걸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내일이면 새로운 해가 떠오르듯 이제 내게도 이전과는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두렵지 않다.


지난 40일간 그랬듯 매일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쳐도, 무례한 순례객이 괴롭혀도, 신발에 자갈이 들어가도, 식사시간에 영업 중인 음식점을 찾지 못해도, 매일 밤 빈대에 물릴까 전전긍긍했어도 모두 이겨냈다. 앞으로의 인생도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전진할 것이다. 예측 못한 난관이 앞길을 방해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꿈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2023.11.20 월요일


Fisterra 피스테라 2일 차


맑음




느지막이 일어나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다. 에너지를 저장할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처럼 많이 먹었다.


근처 코인 세탁소에 들러 침낭과 옷가지들을 전부 세탁·건조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어 순례길 완주를 기념하지 못했다. 식료품점에서 와인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류를 구매하여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서 조촐한 파티를 가졌다. 여유 있게 낮술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걸어온 순례객에게 발급해 주는 인증서를 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문이 잠겨 있고 대신 근처 공립 알베르게로 가라고 적혀있었다. 15년 전에도 인증서를 발급받았던 곳을 찾아가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직원에게 인사를 했다. 인증서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작은 종이와 펜을 내밀며 이름을 적어달란다. 아내와 나의 이름을 정자로 써 돌려주고 기다렸다. 직원은 인증서에 수기로 메모지에 적힌 글자들을 옮겼다. 



서류를 건네어 받고 직원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15년 만에 여기에 다시 왔는데 내부 구조가 많이 바뀌었나 봐요? 지금 앉아 계신 칸막이가 없었고 로비에는 큰 테이블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없어졌네요?"


"네, 맞아요. 코로나가 유행하고서 칸막이를 만들었어요."


과거를 회상하다 문득 당시 인증서를 작성해 준 직원이 떠올랐다.


"예전에 제게 인증서를 발급해 주셨던 직원 분이 기억나요. 눈이 크고 키는 160cm가량에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여성분이었어요."


"그분 아직도 이곳에서 일하세요. 다만 오늘은 근무일이 아니에요. 주말에만 출근하세요."


어제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문을 나섰다. 항구 방면으로 걸어가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도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흐느꼈다.


사실 알베르게에서 직원과 대화를 하는 동안 이미 감정이 복받쳐 올라 목소리가 떨렸다. 눈치 빠른 아내는 자꾸만 내 눈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15년 전의 그 직원이 있었더라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알베르게를 나오니 날씨가 화창했다. 순례길을 제대로 완주하고 15년 만에 인증서를 받았다. 옆에는 아내가 함께 있었다.


내리쬐는 햇빛이 따사로와서, 오랫동안 고대하던 꿈을 이루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서, 그래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


"여보. 너무 고맙고 미안해. 고생했어."


흐느끼며 아내에게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복잡한 감정을 털어냈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새로운 인생에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아내와 함께라면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한층 두터워졌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앞서 머리를 환기시킬 기회가 절실했다. 15년 동안 간직했던 버킷 리스트였다. 순례길에서 보낸 매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고 만난 동료들과의 대화가 무척이나 소중했다. 간절한 진심이 통했는지 다행스럽게도 순례길을 처음 걸을 때 찾고자 했던 삶의 방향은 어느정도 갈피를 잡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성공적인 여정을 마쳤노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찾을 때까지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란다.


피스테라 등대에 있는 0km 표시석과 함께 찍은 15년 전(왼쪽)과 현재(오른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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