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에게
지난 이야기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러모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전히 정신은 없다.
이번 서신은 지난 이야기와 연결된 이야기 대신, 올해 초부터 나의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한 노트를 간단히 공유하고자 한다. 도파민과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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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에 대하여>
그간 나는 '보다 많이 알고 싶다'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따랐다. 이때 '연결'을 통해 '앎'에 접근하고자 하였고, 나는 'A와 B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기능했다. 이를테면 0과 1,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 그때와 지금, 부품과 부품, 이곳과 저곳,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등을.
연결은 내게 그간 분절된 대상들을 잇고자 하는 어떠한 작용, 행위라는 피상적 층위의 관념이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앎', 미시적으로는 작업,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필요 혹은 불필요한 연결, 유용 혹은 무용한 연결에 강력히 몰두한 동시에 그를 바탕으로 쉼 없이 그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연결하는 사람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연결을 피로해하고, 우울해하고, 두려워하고, 어느새 불쾌하게까지 여기게 되었다.
나는 연결을 고민하지 않고, 연결을 시도하지 않고 나서야, 나는 '나의 연결'과 '연결'을 자문하고 탐구하게 되었다.
1. 연결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고찰한 적 있나?
2. 무엇인가를 만들며 세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을 추구한 적이 있었나?
3. 기수립된 관념, 이데아, 시스템, 메커니즘을 정해진 목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구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로써의 연결이지 않았나? 이는 현대 기계 문명에서 비롯된 기계적 연결이지 않았나?
4. 이러한 나의 기존 연결과 부산물들이 새로운 관습과 클리셰로 내게 진득이 붙어있게 되지 않았나?
나는 아직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라 느낀다. 꿈을 꾸는 사람이며, 무엇인가 입증하고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포함한 미지의 것, 역사나 사회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의 새로운 연결을 꿈꾼다. 알 수 없는 만남들을 꾀하고자 한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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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 하면서 요즘을 보내고 있다.
살면서 자신이 충분히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남은 것 같다.
긴장되고 즐겁다.
저번에도 두서없이 끝맺음했는데, 이번에는 더한 것 같다.
여하튼 다음 서신은 이번보다 짧은 시기에, 보다 알찬 내용으로 보낼 수 있길 바라며 이만 마무리한다.
모두 건강하시고, 무탈하시라.
2024. 03.21.
서울.
백승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