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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May 06. 2024

고찰: Memento Mori

Banal vs Profound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 것. 안타깝게도 우리는 익숙함에 자주 속아 넘어가곤 한다. 우주로 나갔다 온 한 우주 비행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있는 지구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는 우주 그 어디에도 없는 천국이라고. 그 우주 비행사는 지구에 착륙하고 헬멧을 벗은 채 처음으로 들이마신 첫 호흡의 순간을 잊을 수 없으리라. 신선한 산소, 들이마시는 순간 목도했던 나무 한 그루, 나뭇잎을 악기 삼아 연주를 뽐내는 바람 한 줄기, 볼을 스쳐가는 바람, 자기와 같은 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 그리고 그 속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자신의 가족. 익숙함에 젖어 살 땐 눈앞에 있어도, 보고 있어도 볼 수 없었던 소중한 것들. 그 우주 비행사는 이 지상낙원에 두 번 태어나는 특혜를 누림으로써 태초의 아담이 목도했을 광경을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다시금 맞이했으리라. 그 순간만큼은 감격에 겨워 자신이 이 땅에 두 발 딛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복에 겨웠을 테다. 지구 최정예 인간이 되어 우주를 탐험했다는 짜릿한 성취감 따위는 그 순간 그 존재가 겪었을 행복의 빛, 존재한다는 사실이 선물하는 그 충만감 앞에서 백기를 들고 뒤로 물러나 있었으리라.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뻔하게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에 매 번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없듯, 이 자명한 사실을 매일같이 되새겨 고찰하는 사람도 드물다. 너무나 익숙해져 '뻔하게 다가오는(banal)' 것일지라도, 내포하고 있는 '깊이가 심오한(profound)'것들이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그 의미가 가닿을 수 없고, 명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 법이다. 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태도를 지니라는 말을 뻔하디 뻔한 낡은 소리(banal)가 아닌 삶의 지혜를 담은 진리의 하나(profound)로 받아들여 몸소 실천한 사람은 응당 삶으로부터 선물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깊은 그 의미를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빛이 와닿는 순간들은 오래가지 않는다.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는 것은 '뻔한 껍데기'일 뿐이다. 그물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건져 올리려는 노력이 허사에 불과하듯이, 기억에 담고 사진에 담고 그때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본들 그 순간의 감격은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직 다가오지 않는 '태초의 순간들'을 언제 어디서든 목도할 수 있는 명징한 눈을 간직하고자 애쓰는 것이 전부일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들, 우리의 존재를 무겁게 잡아끄는 과거의 그물들을 끊어내고 순수한 눈을 갖는 것이다. 


memento mori;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죽음의 문턱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당신은 존재할 테고, 삶이 종착지에 도달했음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을 돌아보며 감사함이나 후회를 느낄 수도 있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춘 채 의식의 빛이 비치는 마지막 현존의 순간을 만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죽음의 문턱을 일단 넘고 나면 감사나 후회를 느낄 체험자로서의 당신은 없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주체는 없다. 자신이 무존재임을 상기해 낼 존재는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탄생을 체험했고, 그 체험은 부모님의 존재나 갓 태어난 당신의 사진, 출생증명서 등을 통해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 한 번 체험하게 될 죽음은, 체험 이후에 도무지 기억될 수 없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을 기리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숨쉬겠지만, 정작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기억할 수 없다. 생각과 기억과 감정의 주체가 더 이상 존재하기를 멈춘 완전한 무(無), 그것이 죽음이다. 


우주 비행사에게 천국을 선물한 최초의 호흡과 메멘토 모리는 한 지점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익숙함에 속지 말 것. 우리 삶의 시작점과 끝점 사이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산소만큼이나 높은 밀도로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삶 그 자체이다. 살아있다는 사실, 생명으로 존재하고, 더군다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지적 능력을 갖춘 인간이라는 종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산소만큼이나 익숙해져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선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가장 뻔한 이 사실이 주는 감동이야말로 삶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긴장을 풀고, 호흡해 보자. 우주 비행사를 벅차오르게 한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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