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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Jul 17. 2024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지친 MZ들 사이에서 ‘폐쇄성 SNS’가 유행하고 있다. 진정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며 알림이 뜨면 즉각적으로 사진을 찍어 보정 없이 올려야 하는 ‘비리얼’이 대표적이다. 이런 앱이 유행한다는 것보다 MZ들이 인스타그램에 지쳤다는 점이 더 마음에 남았다. 20대도 지쳤구나. 내가 나이가 먹어서 지친 게 아니었어. 비단 인스타그램에서만 느끼는 피로감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척하지만, 집과 차를 간접적으로 자랑하는 관찰 예능과 시들지 않는 외모만을 주목하는 연예계가 불편하면서도 빠져들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여느 하루처럼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연예계 영상물에 지친 사람치고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모두 놓지 못하고 있다. 적적한 자취방을 채우는 오디오로 OTT가 딱이다. <라디오스타>는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클립 영상이 있는 회차만 골라본다. 예전에는 김구라와 게스트가 언제 싸울까 조마조마해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둘째 낳고 많이 순해진 후로, 채널을 돌리는 경우는 게스트들이 어설픈 장기자랑 할 때 빼고는 잘 없다. 


이번에 고른 회차의 게스트는 김창완과 자우림의 김윤아였다. 김창완이 27년간 진행했던 라디오를 정리하며, 울컥한 영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단단한 사람이 기타를 꼭 안고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른이 되어도 틈이 없는 단단함을 가지기가 어렵구나. 김윤아는 근본 있는 당당한 태도와 아우라가 멋져 마음속으로 조용히 동경했다. 얇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줏빛 아우라는 어떤 날에는 범접할 수 없는 라커의 기질도 보였다가 어떤 날에는 부드러운 밴드의 기질도 보였다. 이날 라디오스타에서의 김윤아는 사람 자체의 김윤아였다.


      

“가사 영감은 어디서 받으세요?”

“뉴스로 얻어요. 사회적인 문제로 가사 영감을 얻는데 자우림이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어떨 때는 젊은 분들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요즘 젊은 분들이 꿈꾸기 힘든 시대잖아요. 제가 일을 구하기 시작했을 때가 93년도였는데 그땐 취업이 어렵지도 않았고 초봉이 2,000만 원대였어요. 30년이 지났지만, 초봉은 비슷하고 주거적인 비용이 더 커졌어요. 젊은 분들이 도대체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 잘 모르는 시대가 온 거죠.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서 쓴 곡이 <샤이닝>입니다. 노래가 사랑받지 않아도 좋으니, 젊은 분들이 맘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그제야 찾아본 <샤이닝>의 가사는 내 불안을 거울로 비춘 듯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이런 불안이 들켰을 때, 불편한 마음과 동시에 위로가 된다. 자주 듣기보다는 자기 전에 어두운 방에서 들으며 자우림에게 조용히 위로를 받는다.          


김창완은 라디오에서 3년간 상담코너를 진행하며 손편지로 답변을 남긴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민이라는 청취자에게 어설프지만,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남겼다.      


“너무 외로움에 빠지지 마시고, 외로움을 창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감옥이라 여기고, 어떤 사람은 손을 내밀 문으로 삼을 것입니다.”     


예능으로 이런 위로를 받는 건 참, 오랜만이다. 소박한 위로에서 그들과 얇은 연대감을 느낀다. 이걸 알아주다니. 모든 연예인이 이런 메시지를 늘 던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끔은 사회적인 부분도 조금은 만져주었으면 한다.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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