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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Nov 09. 2024

고흐는 천재가 아니다.

영혼의 편지들

예술에 문외한 내가 미술관에 갈 때면 작품과 줄다리기하는 기분이다. 작품은 쉽게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고,  나는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려 하지 않는 팽팽함. 딱 봤을 때, 의미가 와닿지 않는 작품은 나에게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미술관 구경은 30분이면 충분했다. 예술은 왜 이렇게 불친절한지 모르겠다며. 미술관을 좋아하는 친구 소소에게 한탄했다.     


“쉽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작가도 좋고 관람객도 좋잖아. 괜히 어렵게 말해서 더 바라보게 하고, 곱씹게 하는 게 예술인 것 같아.”

“정확하게 예술의 쓸모에 대해서 짚었네.”    

 

무심히 지나간 작품들 중, 입안에서 단물 빠진 껌을 굴려보듯 요리조리 뜯어보는 작품이 있다. 나탈리 카르푸센코 사진 전시회의 작품들이 그랬다. 푸른 바다에서 비현실적인 크기의 고래와 티끌만 한 사람이 수영하는 사진은 줄 서서 구경해야 정도로 인기가 많고 신비로웠다. 마냥 예쁜 사진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탈리는 보통의 경각심이 최악의 사진으로부터 출발하는 게 싫었다고 한다. 플라스틱 통에 갈매기의 부리가 끼이고, 물고기의 배에서 나오는 캔뚜껑 사진만 환경보호를 외칠 수 있는 건 아니다. 깨끗한 바다에서 고래와 함께 유영하는 사진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지켜주자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이솝우화로 친다면, <해님과 구름> 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정신 차려보니, 나름 해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흠칫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어렵게 말할수록,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뉴욕의 미술관을 세 군데나 예매했다.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예술의 쓸모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이 근원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미술관 방문을 앞두고 기대감이 컸겠지만, 오히려 나는 반대였다. 잔뜩 긴장했다. 혹시나 거장의 그림을 보고 왔다는 자부심만 느끼고 오지 않을까. 시간을 쪼개서 갔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 없는 건 아닐는지 말이다. 미술관과 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튕겨보며, 느슨히 만들기로 했다. 출국 전에 유명 화가들의 책을 읽었다, 그중에 하나가 <빈센트 반고흐,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이었다. 고흐가 작품을 그리는 동안,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고흐를 처음 만난 건,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였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정도의 인기를 예상했다. 어떤 구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관람객의 뒤통수가 나올 정도의 인기를 예상하며 고흐에게로 갔다. 예상과는 달리,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한산했다. 새하얀 벽에서 오후의 볕을 받으며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를 두면, 머릿속에 있던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거장의 그림은 가까이 봤을 때, 진가를 더한다. 측면에서 아주 가까이 뜯어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고흐는 천재가 아니다. 유명 화가들은 재능을 타고나서, 모든 획마다 계획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흐의 머릿속에 스케치가 다 그려진 컬러링 도안이 있어, 그림을 뚝딱 완성했을 거라 넘겨짚었다. 고흐가 얼마나 유명하고, 작품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만 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딱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측면의 <별이 빛나는 밤>은 아주 두텁고 울퉁불퉁했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획이 쌓이고 또 쌓여 두터운 단층의 연속이었다. 고흐도 획을 긋도 고치고 획을 긋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마치 내가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기 위해 집착적으로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동생 테오로부터 받는 후원을 빨리 청산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자신이 상황이 고달팠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말들을 써 내려갔다.      


“끊임없는 노력이란, 쉼 없는 작업이라는 의미보다는 남들이 아무리 왈가왈부해도 자신이 본 걸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뜻해.”
“내가 화려한 신발을 신고 부유한 삶을 사는 신사였다면, 이런 무관심이 정말 괴로웠겠지. 하지만 난 나막신을 신고 다니니깐 잘 헤쳐나갈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할 수 있냐는 거야.”

     

고흐는 결국, 무명한 채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동생 테오와의 편지 수백 통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흐의 작품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흐와의 첫 만남은 소개팅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소개팅 전에 받아본 사진으로는 너무 잘생겨서 거리감이 생겼지만, 막상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인간적인 면모도 있고, 오히려 위로도 받는 기분이었다. 글로 먹고살기 위해 방구석에서 끄적일 때면 고흐의 말을 떠올린다.     

 

“작은 일들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거야.”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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