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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Nov 09. 2024

2. 자유와 독립은 존중할 때 완성된다.

자유의 여신상을 가지려는 자, 빈틈을 노려라.

패리 출발까지 30분이나 남았다. 숙소에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햇빛이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갑판으로 자외선이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눈가에서 주근깨가 올라오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가방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햇빛을 막아보고 부채질도 해봤지만 탱크톱이 땀으로 젖어갔다. 일광욕을 즐기는 서양인들마저 실내로 피신했다. 서로 돌아가며 자리도 지켰다가 실내로 들어갔다 했다. 나는 기적적으로 얻은 한자리였기 때문에 악착같이 자외선을 이겨냈다.      


드디어, 페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이드인 잭이 마이크를 들었다. 동그란 배와 덥수룩한 수염과 살짝 긴 헤어스타일이 방구석 하드락커를 떠올리게 했다. 콜라와 기타를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 외모였다. 잭은 투어 하는 내내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쉼 없이 말하는 동안 한마디도 절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듣고 공부했던 영어 발음은 친절한 편이었다. 잭의 설명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배경음악쯤으로 여기며, 허드슨 강을 따라 랜드마크를 구경했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해튼 브릿지, 뉴욕의 시티뷰까지 모두 보고 나서 마지막인  자유의 여신상으로 페리가 물표면을 할퀴며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자유의 여신상이 콩알만큼 보이자, 갑판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난간에 자리 잡았다. 뒤늦게 일어나 난간에 빈틈이 있는지 둘러봤지만, 사람들로 빽빽했다. 덩치 좋은 사람들에게 밀려난 나는 까치발로 어깨너머로 가까워지는 자유의 여신상을 드문드문 눈으로 담았다. 다리에 쥐가 날려는 찰나에 반대편 갑판에 자리가 여유로운 걸 발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갔다. 티를 너무 많이 냈는지, 내 뒤로 관광객들이 하나둘 줄지어 따라왔다.    

  

자유의 여신상 바로 앞에 도착하고, 페리가 멈췄다. 높이 93m의 여신은 거대했다. 프랑스가 300조각으로 분리해서 미국으로 실어 나른 후에 다시 조립했다고 하는데, 만 조작으로 나눠도 충분하지 않을 크기였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를 상징하는 부분이 많다. 횃불과 독립선언문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가장 눈여겨봤던 부분은 여신의 발 밑에 있다. 여신은 ‘쇠사슬’을 밟고 있다. 바로 ‘노예제도 폐지’를 상징하는 부분이다. 억압으로 벗어난 자유도 있고,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자유도 있다. 타인을 존중할 때,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 완성된다.      

사진 찍기 바쁜 관광객 사이에서 푸른 자유의 여신상을 눈으로 열심히 찍었다. 관광객들이 여유로울 때, 사진을 부탁할 요령이었다. 그때, 갑자기 페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리는 여신상 앞에서 10분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사진 찍던 사람들이 더 분주해졌다. 바로 옆, 한국인 커플의 사진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더 촘촘해졌다. 남자는 여자친구를 자유의 여신상 바로 앞에 밀어 던졌다. 여자친구는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알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여유를 만끽하는 포즈를 취했다. 남자는 엄청난 손놀림으로 셔터를 빠르게 눌렀다. 옆에서 흘깃 본 사진은 엉망이었다. 바람에 휘날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친 사진만 수두룩했다. 그래도 그 여자친구가 부러웠다. 자유의 여신상과 한 프레임에 존재하는 사진만큼 뉴욕을 티 낼 수 있는 사진은 없다. 사진 요청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급한 대로 멀어지는 자유의 여신상의 바짓가랑이를 쥐어 잡고 셀카를 찍어봤다. 결과는 실패했다. 출발할 때에는 그렇게 느리던 페리가 기분 탓인지 돌아갈 때는 속력이 2배처럼 느껴졌다. 비장의 무기였던 탱크톱이 무색했던 투어였다.      


선착장에 도착하고 페리에서 씁쓸하게 내렸다. 사진가가 내리는 관광객들에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을 구매할 건지 물어봤다. 만약에 합성이 잘 되었다면, 실패한 사진을 여기서 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사진을 확인했다. 두 눈을 의심했다. 앙증맞은 포즈 뒤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 브릿지가 쌍칼처럼 대각선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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