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숨겨둔 필살기
삼각대를 여권만큼이나 소중히 여겼다. 나 홀로 여행자에게 삼각대란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다. 팔이 욱신거릴 정도로 가방이 무거웠지만, 삼각대만큼은 꼭 챙겼다. 뉴욕은 언제 멋진 배경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믿는 구석이 필요했다. 싼 가격에 구한 삼각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담한 사이즈의 삼각대는 바람이 살짝 불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압축된 다리를 모두 풀고 세우기까지 아주 번거로웠다. 다리를 끝까지 펼쳐봐도 화면에 땅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무엇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삼각대를 앞에 두고 미소를 지으려니 아주 어색했다.
남는 게 사진이라는 말은 세계적으로 통하는 관용어다. 뉴욕의 어떤 명소를 가든 사람들은 사진으로 여행을 남기기 바쁘다. 서로 찍어주고 찍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멀뚱히 서 있으면 부럽고도 외로웠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는 반고흐 <별이 빛나는 밤>만큼이나 사람이 끊이지 않는 전시실이 있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전시실이다. 새하얗고 큰 흰 벽 전체에 모네의 <수련> 시리즈가 세 개의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예술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모네의 신념처럼 전시실 안에는 앉아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 하지만, 의자에 앉으면 작품을 오로지 감상할 수 없다. <수련>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틈에서 필사적으로 <수련>을 눈에 남기려고 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나도 사진 대기 줄에 섰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할머니들에게 용기 내서 물었다.
“Can you take a picture? (사진 찍어주실 수 있나요?)”
“Sure. (그럼!)”
할머니들은 예상과는 다른 구도로 핸드폰을 들었다. 손을 위로 번쩍 뻗은 위치에서 나를 내리찍었다. <수련> 작품을 최대한 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까치발을 들고 화면 속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결과는 성냥처럼 머리가 크게 나왔지만, 할머니의 미소가 눈에 남았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할머니가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Of course. Lovely! (아주 마음에 들어요,)”
사진이 마음에 든다는 의미였는데, 혹시 스스로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꼴값으로 본 건 아닐는지 걱정이다. 보답으로 나도 사진을 찍어드렸다. 할머니들은 <수련> 앞에서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었다. 나도 이렇게 귀여운 포즈를 지을 수 있는 동행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모마 이후로, 사진 요청에 자신감이 붙었다. 혼자서 글로벌 사진 대회를 열었다. 너무 심심해서 마음속 무대를 만든 셈이다. 명소마다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각자의 개성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했다. 참가 기준은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찍어줄 것 같은 사람이 되기도 했고, 끝내주는 구도로 찍어줄 한국인이 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타임스퀘어는 화려한 전광판들로 정체성을 과시한다. 전광판마다 제발 내 영상 좀 보라며 호소한다. 타임스퀘어의 짙은 인상을 사진이 아닌 역동적인 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바로 옆에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중, 아빠처럼 푸근해 보이는 해리에게 영상을 요청했다. 해리는 흔쾌히 내 핸드폰을 받아 들었지만, 영상을 어떻게 찍을지 곤란해했다. 해리에게 온몸을 활용해서 구도를 설명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들고 있으면 제가 화면 중간으로 달려가 점프를 할게요.”
해리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를 품고 결과물을 확인했다. 해리는 내가 이제 달려가면 되냐고 묻는 순간부터 달리고 점프하는 장면까지 화면에서 빼먹지 않았다. 달려가는 나를 열심히 카메라 이동으로 쫓아와 준 것이다. 여행자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한국인은 숨겨둔 필살기였다. 여기만큼은 꼭 인생 사진을 찍고 싶다는 곳에만 한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곳이 바로 브루클린 브릿지 밑에 있는 ‘덤보(DUMBO)’였다. 덤보는 뉴욕의 대표적인 사진 명소로 갈색 벽 건물 사이에 파란 맨해튼 브릿지가 보이는 게 특징이다. 덤보에서 프러포즈하기 위해 매일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가 갔을 때도, 한 남성이 무릎을 꿇으며 프러포즈 중이었다. 덤보만큼은 프로필 사진으로 쓸 수 있는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저 멀리서 예사롭지 않은 자세로 동행을 찍어주는 여행자를 발견했다. 나는 자세만으로 한국인임을 확신했다. 그들은 내 요청에 누가 셔터를 누를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했다.
“네가 잘 찍잖아.”
“아니야. 여긴 배경 위주로 찍어야 하니깐 네가 찍는 게 낫겠어.”
지목된 여자는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툭 올리며, 비장하게 내 핸드폰을 들었다. 나는 맨해튼 브릿지를 배경으로 브이 했다. 여자는 바닥 가까이 핸드폰 두곤 화면을 살짝 들었다. 다리가 길게 나오는 구도의 정석이었다. 브이 자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셔터를 누르며 다른 포즈를 이것저것 제안했다. 나는 팔도 번쩍 들었다가, 괜히 뒤도 돌아보고, 걸어보기도 했다. 여자는 핸드폰을 자신 있게 돌려주며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마치 당연히 마음에 쏙 들 것이라는 듯이. 그렇게 그녀가 찍어준 사진은 오래도록 카톡 프로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뉴욕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표정과 포즈가 복사·붙여 넣기 수준으로 같다. 어색한 미소와 앙증맞은 V. 하긴 여행 내내 이 표정으로 뉴욕을 활보했던 것 같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매일 바꿀 생각이었는데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달리 생각하면, 언제 또 이렇게 전 세계적인 사람들의 사진 실력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