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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Oct 26. 2024

(1) 자유와 독립은 존중할 때 완성된다.

혼자 사는 것보다 혼자 여행하는 게 더 외로울 때가 있다.

비장의 무기인 탱크톱을 입은 날이었다. 화끈하게 입은 만큼, 아주 중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자유의 여신상. 뉴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드론으로 높이 솟은 자유의 여신상을 찍은 장면이다. 뉴욕 배경의 영상물이라면 이 인서트는 무조건 들어간다. <나 홀로 집에>, <섹스 앤 더시티> 등. 촛불을 든 여신은 뉴욕의 간판 역할을 100년 이상 해내고 있다. 내 목표는 자유의 여신상에서 프로필 사진을 건지는 것이었다. 대어를 낚기 위해 옷차림도 비장하게 준비했다.     

 

평상시 뉴욕의 로망이 전혀 없었다는 걸 자유의 여신상의 위치를 확인하며 깨달았다. 뉴욕의 한가운데 있을 거라고 예상과는 달리, 자유의 여신상은 아주 밑에 있다 못해 리버티 아일랜드라는 섬에 위치해 있었다. 페리를 타야 했다. 심지어 무료 페리가 있었다는 것도 몰라서 10만 원짜리 랜드마크 페리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뒤늦게 쓸데없는 곳에 돈을 투자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긍정회로를 빠르게 돌렸다. 


‘한 번에 여러 랜드마크를 볼 수 있잖아. 일석이조네!’     

숙소에서 선착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뉴욕에서 20분 걷기는 껌이다. 택시는 고사하고 지하철 요금만 편도 사천 원이었기 때문에 30분 거리는 무조건 걸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을의 뉴욕은 기꺼이 걷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선선한 공기가 나뭇잎을 살랑 흔들며 지나가고 갈색 벽돌의 건물들이 좁은 골목에 뻗어있었다. 자그마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책 읽는 손님들만 구경해도 길이 금방 짧아졌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였다. 투어 출발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다행히, 매표소가 열려있어, 예약한 이름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크루즈에 탈 수 있는 승선장 문이 열렸다. 나를 포함한 관공객들이 줄을 지어 승선장으로 들어갔다. 페리를 타기 직전, 포토월이 있었다. 적극적인 사진가에 의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포토월에서 서야 했다. 혼자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즈를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레드카펫에 선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뉴욕에서 어쩔 수 없이 공식 포즈가 되어버린 어색한 브이를 들어보았다. 더 나아가 왼발도 소심하게 들었다. 사진가는 빠르게 찍어주며 엄지를 들었다. 사진은 투어를 다녀온 후, 합성된 결과물을 보고 구매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었다.      

페리에 올라타자, 사람들은 고민도 없이 야외 갑판에 자리 잡았다. 실내도 유리창이 크게 있었지만, 자유의 여신상을 제대로 보기에는 야외가 딱이었다. 야외는 벌써 자리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다행히, 혼자였기 때문에 빈틈이 있는 자리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푸른 눈의 가족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려고 하자,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손으로 의자를 막았다.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웁쓰’하며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속으로는 무안하고 서러웠다. 혼자 사는 것과 혼자 여행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외로운지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다. 혼자 여행할 때는 외로움의 정도가 더 짙다. 야외 갑판을 방황하다, 자리 하나를 겨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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