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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May 28. 2024

쓰레기를 밟고 선 나무

앨범에 꽃 사진을 담아두는 나이가 되었다. 잡초로 인식되었던 꽃이 요즘은 자연 전시회의 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사진 프레임을 액자 삼아 앨범에 담아둔다. 우연히, 앨범을 뒤적거리다 꽃 사진을 발견하면 색 보정으로 색감을 건드려보는 재미도 있다. 요즘 같은 날씨만큼, 야외활동하기 좋은 날이 없다. 선선하면서도 따뜻한 날씨는 ‘얼리버드 할인’처럼 조바심을 내게 한다. ‘자, 한여름이 되기 전에 야외활동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집 데이트를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나조차도 결국 신발을 신게 한다. 우리는 이 마지막 시즌을 ‘대구수목원’에서 즐겨보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특수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많이 걷는다. 처벌로 운동장을 학생과 같이 뛰거나 일반 과목 수업 대신에 바깥 산책을 나서곤 한다. 대구수목원도 그가 이미 수업의 일환으로 다녀간 장소였다. 남자친구는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수목원이 생각보다 꽤 크다? 괜찮겠어?”

“나도 매일 조깅하는 사람이야.”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는 수목원의 크기는 무려 23만 평이다. 총 1,750종 35만 본의 식물을 품을 만큼 방대한 땅이다. 초입에는 보이는 식물원마다 구경할 만큼 의지가 넘쳤다. 열대 과일원에 들어가자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때렸다. 동남아시아에서 볼 법한 바나나가 실제로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묵직해 보이던지 나뭇가지가 안쓰러워 잘라주고 싶었다. 종교 식물원에는 부처님 나무라 불리는 보리수나무가 있었다. 나무 기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피부가 투명해 오장육부가 다 보이는 신체 같았다. 식물원을 나와서도 풀 구경은 계속되었다. 잡초인 줄 알았는데 이름표가 달린 풀들이 산책길에 빼곡했기 때문이다. 이런 풀을 일상에서 마주했다면 뽑거나 밟거나 무시했겠지만, 이름표 하나를 달자 혹여나 밟을까 조심하게 되었다. 이 작은 풀을 대하는 수목원의 방식이 다정했다.      


중반부에 있는 전시관에 다다랐다. 외관 현수막에 짧게 소개된 대구수목원의 역사를 읽고서는 입이 쩍 벌어졌다. 수목원이 되기 전에 이 땅은 사실 쓰레기 매립지였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생활 쓰레기가 410만 톤가량이 18m 높이로 매립된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이 수치를 8톤 덤프트럭으로 계산해보면, 약 51만대가 넘는다. 쓰레기양이 한계를 넘자 침출수나 악취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권까지 위협받았다. 내가 걸어온 산책길을 되돌아보았다. 푸른 나무들이 수수께끼를 냈다. ‘그 많던 쓰레기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전시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수목원은 쓰레기를 밟고 서 있었다. 매립지를 7~8m의 흙으로 덮었다. 당시 허구적인 사업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목원은 예산을 아끼기 위해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 중에 나왔던 사토를 활용하고 시민들로부터 식물을 기증받았다. 그 결과, 지금의 수목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기증해준 식물을 돈으로 환산하면 억대가 넘었다. 수목원 중간마다 얇은 파이프 기둥이 있다. 열대 과일원 근처에도 이 파이프 기둥을 볼 수 있었는데, 입구에서 맡은 콤콤한 냄새의 원인이 이 기둥에 있었다. 덮어둔 쓰레기에서 나온 유해가스를 이 기둥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포켓몬 게임처럼 산책 중에 파이프를 찾는 것 또한 재미 요소였다. 대구수목원의 단층을 표현한 전시물을 봤다. 멀리서 보면, 포크를 꽂은 티라미수 케이크 같았다. 이 방식은 국내 다른 생태공원에 귀감이 되었다. 서울 난지도 생태공원 또한 대구수목원을 참고한 장소 중에 하나다. 수목원이 식물을 대하는 다정한 방식은 쓰레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쓰레기와 자연은 가장 상반된 개념이다. 이 둘을 공존시키기까지 잡초 하나조차도 식물로 대했을 것이다.      


본가가 있는 동네는 한적하다. 어릴 적에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바글바글했는데, 이제는 저녁 8시만 되도 캄캄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본가에 오랜만에 들렸던 어느 날, 동네 초입부에 차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핑크뮬리 때문이었다. 인구가 줄고 동네가 으슥해지자 군청에서 강가에 핑크뮬리를 심기 시작했다. 근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작년 여름에 왔을 때만 해도 그 장소는 해바라기가 만연했다. 군청은 시기에 따라 식물 갈아 끼웠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별로 심어지는 식물에 그 장소만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핑크뮬리 밭에서만 사진 찍지 동네 깊숙이 들어오진 않았다. 일주일 뒤에 무참히 뽑힐 핑크뮬리를 분류하자면, 식물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장식물에 속하는 듯하다. 


수목원이 2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찾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수목원은 식물 자체로서 사랑받는다. 전문 카메라로 꽃을 찍거나 맨발로 흙을 느끼거나 식물을 더 알기 위해 설명을 읽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수목원을 즐긴다. 그 경험은 오랫동안 마음 한쪽에 축적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떠올라 수목원을 찾는다. 한 바퀴를 다 돌고 광장을 지나치는데 남자친구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여기서 졸업 사진 찍었는데 기억 안 나?”

“여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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